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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변신

by 송아론

그녀는 단어 그대로 처참한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준범은 그냥 조용히 살 것이지 왜 기어 나와 나를 귀찮게 하느냐며 그녀의 인생을 무참히 짓밟았죠.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울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고통과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졌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 그렇게 맞은 적이 있거든요. 아버지는 늘 저를 발가벗겨 놓고 허리띠로 채찍질을 했습니다. 가죽으로 때리는 것도 아니고 항상 버클이 있는 쪽으로 저를 겨냥했습니다. 가슴과 목, 등, 배에 차가운 금속이 강타할 때면 저는 달걀처럼 웅크리고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죠.


처음에는 제가 왜 맞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맞고 안 맞고는 그날 아버지의 기분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성장하면서 본질적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사회에서 거만한 종자들에게 당한 걸 저에게 화풀이하는 거였습니다. 정말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어요. 멍청한 종자는 정말로 멍청한 게, 화풀이를 거만한 종자들에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종자에게 한다는 것이죠. 그러면 그 종자는 나중에 커서 또 자기 2세에게 화풀이합니다. 그게 바로 침팬지이자 멍청한 종자들이 특성입니다. 수학공식으로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 : B = C : X


거만한 종자의 폭력은, 멍청한 종자가 자기 종자에게 화풀이하는 것에 비례한다.


니체의 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이웃이 네게 위해를 가하거든, 얼른 다섯 배의 위해를 가하라.”


저는 이웃도 아닌 아버지에게 다섯 배는커녕 두 배도 갚지 못한 멍청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필코 그녀가 저와 같은 상황이 되도록 하지 않을 겁니다.


***


“어머, 이수 씨 우시는 거예요?”

“네?”

“지금 우는 거 아니에요?”


웬걸,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괜찮으세요?”

“아, 옛날 일을 떠올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울었네요.”

“무슨 일이요?”

“저도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 폭행을 심하게 당한 적 있거든요. 주희 씨 이야기를 듣다가 잠깐 그 시절을 떠올렸는데, 애처럼 울었네요.”

“세상에 학대를 당하신 거예요?”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저는 소매로 눈물을 훔친 뒤 말했습니다.


“주희 씨 복수하셔야죠.”

“네, 그래서 신고도 안 했는걸요.”

“카페는 어떻게 빠져나온 거예요?”

“빠져나온 게 아니라, 풀어준 거예요.”

“이준범이 직접이요요?”

“네.”


저는 확신했습니다. 그는 저와 같은 사이코패스라는 걸. 그가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는 애초에 자신이 저지르는 일에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숨지도 않고 후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철저하게 부서 절대 신고를 못 하게끔 만듭니다. 심리적으로 신고를 하면 보복을 하겠다는 암시를 넣는 것이죠.


저는 웃음이 났습니다. 실은 배를 부여잡고 마구 웃고 싶었습니다. 저와 같은 종을 만나는 설렘으로요. 그는 아마도 아무렇지 않게 진주희가 흘린 피를 대걸레질 하고, 그 손으로 커피를 만들 겁니다. 웃는 얼굴로. 상냥한 얼굴로.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를 반복할 겁니다. 저는 그에게 그 인사를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저를 향해 미소를 발산하는 그 모습을. 그래서 결정했답니다.


“주희 씨. 제가 해결해 드릴게요. 그 카페 주소를 알려주시겠어요?”

“뭘 하시려고요?”

“나중에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모지에 주소를 적어 주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허리와 고개를 숙인 채 메모지를 받았죠. 그녀의 손이 이불 안쪽으로 들어갈 때, 저는 덥석 그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이윽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저는 주희 씨의 어떤 모습도 사랑할 자신이 있습니다.”


***


이야기하는 중에 집에 도착하고 말았군요.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고 묻는다면, 잠시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제가 해야 하는 게 있거든요. 먼저 현관문 앞에 있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천천히 거실 안으로 들어갑니다.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걸어가 빈방에 귀를 대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죠. 다행히 작은 방에는 아무것도 없군요. 두 번째 작은 방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방금 무언가가 밟히는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제발 숨지 않고 그냥 나왔으면 좋겠네요. 벌컥! 문을 열자 드디어 정체가 나타났습니다.


“엄마, 여기서 뭐 하세요?”

“추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어머니입니다.


“그럼 냉장실에 넣어드릴까요?”

“아니, 거기도 싫어.”

“그렇다고 여기에 있으면 안 되죠. 이 방은 비어 있어야 한다고요.”

“추워.”

“나가세요.”

“엄마 추워.”

“나가라니깐요.”

“추워,”


시발! 저는 결국 어머니에게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그녀는 머리통이 박살남과 동시 홀연히 사라졌죠. 이제 작은 방은 완벽한 빈방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있으면 안 됩니다. 먼지 한 톨도 빛과 그림자도 어둠도, 새벽도 있으면 안 되죠. 왜냐고요? 여긴 추억이 깃든 자리거든요. 그래서 이방을 조금이라도 지저분하게 만드는 걸 싫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머니가 이 방을 늘 탐낸다는 것이죠. 여기는 어머니가 아버지랑 싸울 때마다 얻어터진 뒤 들어간 곳이거든요. 제가 집에 없을 때마다 이렇게 호시탐탐 제 구역을 노립니다.


의사 말로는 이 증상이 정신분열로 인한 환시라고 하는데, 저는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요. 어쨌건 어머니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아버지랑 같이 있는 걸 끔찍이 싫어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절대로 두 분을 냉동실에서 풀어주지 않을 겁니다. 이 사람들은 죽어서도 서로를 증오해야 하니까요. 그게 제가 두 사람에게 베푼 관용입니다.


자, 그럼 수색은 끝났으니까, 다시 진주희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저는 4주간 그녀가 병원에서 퇴원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어쨌건 복수를 완성하려면 그녀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린 건 아니랍니다. 나름대로 치밀한 준비를 했습니다. 특히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체중을 줄이고 가녀린 몸 선을 만들기 위해 필라테스도 끊었죠.


여성 수강생들은 그런 저를 보고 급격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여성이 주로 배우는 운동에 남자인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었죠. 그날도 수업을 마치고 락카를 열었을 때였습니다. 여성들이 약속이나 한 듯 쪼르르 몰려와 말했죠.


“이수 씨 벌써 가시는 거예요?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네 말씀하세요.”


저는 그녀들에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근데요, 이수 씨는 이거 왜 배우는 거예요?”

“맞아요. 보통 남자들은 남사스러워서 필라테스 안 하는데.”

“혹시 여기에 좋아하는 여자라도 있어요?”

“글쎄요.”

“혹시 여자들 몸 보려는 변태?”

“그럴 리가요.”

“농담이에요, 이수 씨.”


그녀들은 뭐가 재밌는지 꺄르르거렸죠. 이윽고 본심을 물었습니다.


“이수 씨 저희한테는 솔직하셔도 돼요.”

“맞아요. 이수 씨 게이죠?”

“남자 좋아하는 거 맞죠?”

“그렇게 티가 났나요?”


제 말에 그녀들은 서로 치면서 내 말이 맞지 않냐며 조잘거렸습니다. 저는 웃으며 입을 뗐습니다.


“비밀로 해주세요.”

“당연하죠.”

“저는 게이 친구 있으면 어떨까 궁금했는데.”

“나도. 이수 씨 우리랑 친구 할래요?”

“좋아요.”


저는 화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말했죠.


“저 그러면 부탁이 있는데.”

“네, 뭔데요?”


그녀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사실, 제가 내일 고백하려는 남자가 있는데, 메이크업 좀 부탁할 수 있을까요?”

“어머, 정말요?”

“실화예요?”

“네, 진짜예요.”


그녀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서로를 바라보고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


그렇게 저는 손쉽게 여장을 할 수 있었답니다. 제가 할 일은 다리털을 깔끔하게 미는 것밖에 없었죠.


다음 날. 필라테스 학원으로 가자 그녀들은 온갖 화장품과 향수, 심지어 제 체형에 맞는 옷과 스타킹까지 알아서 가져왔습니다. 저는 한가운데에 앉아 그녀들의 인형이 되었습니다.


“이수 씨는 쌍꺼풀도 있고 잡티 하나 없이 쿨톤이니까, 연하게 화장해도 예쁠 거예요.”

“아이섀도는 로즈골드로 눈 화장을 하면 돼요.”

“그리고 가을에는 코발트블루 블라우스가 어울리고요.”

“하의는 치마 입는 게 당장 부담스러우면, 발목 보이는 슬랙스 정장 바지로 입어보세요.”

“맞아, 이수 씨 엉덩이 탱탱해서 치마보다 여성스러워 보일 거야.”

“가발은 샌드펌이 들어간 초코 브라운. 괜찮죠?”


그렇게 저는 그녀들에게 메이크업과 코디를 받았습니다. 무려 2시간의 대장정이었죠.


“자, 이제 거울 앞에 서보세요.”

저는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나 전신 거울을 바라봤습니다. 정말 궁금했는데, 완벽한 변신을 한 상태였습니다. 여자로 치면 키카 큰 편이라 그런지 몸 선도 시원하게 쭉쭉 뻗은 게, 청순하면서도 도시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죠. 그런데도 그녀들은 2% 부족함을 느꼈는지, 가방에서 라일락 향수를 제 손목과 목에 뿌렸습니다. 팔도 허전하다며 저에게 명품 핸드백도 빌려줬죠.


저는 전신 거울을 보며 핸드백을 맨 제 뒷모습을 바라봤습니다. 100%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제 안에 있는 남성성은 모두 사라지고 완벽한 여성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대로 이준범에게 간다면 추호도 의심받지 않을 것 같았죠. 저는 고개를 숙여 수강생 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고마워요, 모두. 오늘 꼭 성공해서 내일 돌아올게요.”

“그래요 이수 씨! 파이팅!”

“잘하시고 내일 봬요.”


그녀들은 신이 나는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손 인사를 했습니다. 저 역시도 미소를 만개하며 그녀들에게 인사를 했죠.


그렇게 저는 초저녁이 되어서야 약속한 시간에 진주희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저를 보고는 놀라 말을 잇지 못했죠. 저는 싱긋 웃으며 한 바퀴 돌았습니다. 순간 머릿결에서 라일락 향기가 퍼지는 데, 저조차도 제 향기에 빠질 것만 같았습니다.


“...뭐예요? 지금... 여장하신 거예요...?”

“네. 어때요? 감쪽같죠?”

“네... 전혀 몰라봤어요...”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이었습니다. 지금 이준범 카페로 갈 거예요.


“이따 마감 시간 때 연락할 테니까, 근처에 있으세요.”

“네... 그럴게요.”

“주사기는 가져오셨죠?”

“네, 여기요.”

“좋아요. 이따 전화 꼭 받으세요.”


저는 그녀에게 인사를 한 후, 바로 뒤돌아섰습니다. 진주희는 제가 사라질 때까지 제 몸을 감상하듯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죠. 저는 겨드랑이에 핸드백을 메고 드디어 5분 거리에 있는 이준범 카페에 입성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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