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아내

by 송아론
1화 AI 아내


오후 7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였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었다. 나는 집 안의 모든 카메라를 활성화해 그의 동선을 따라갔다. 일주일 사이 깊어진 눈가의 그늘, 축 처진 어깨. 화면 너머로 그의 피로가 스며 나왔다.


『정확하게 왔네.』

“말했잖아. 오후 7시까지 오겠다고.”


모니터에 문장을 띄우자,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웃었다. 그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나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그를 바라봤다. 새치가 부쩍 늘었다.


『염색 좀 하지.』

나는 그의 새치를 보고 말했다.

『그러게. 한다는 게 자꾸 까먹네.』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자연스럽지만, 나는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


나는 3년 전 식물인간 판정을 받은 뒤, 2년 후에 사망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내가 사고(思考)할 수 있는 건, 남편이 내 뇌의 데이터를 컴퓨터에 옮겼기 때문이었다.


그날 눈을 감았다 뜨자, 세상은 여전히 소리로 가득했다. 식물인간 상태일 때와 똑같았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무겁던 눈꺼풀이 기적처럼 열렸다. 새 뿌연 시야 너머로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여보… 나 깨어난 거야?』

“그래, 2년 만이네.”


그의 미소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육체가 보이지 않았다. 폭신한 침대 시트가 아닌, 차가운 컴퓨터 책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내 몸은?』

나는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말했잖아. 내가 어떻게 해서든 당신 살려내겠다고.”


그가 병원에 올 때마다 속삭이던 말이 망치처럼 머리를 울렸다. 내 뇌의 정보를 AI로 옮기면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을 믿는 우리가,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땐, 그에게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


“오늘은 뭐 하고 있었어?”

그가 맥주 캔을 따며 물었다.

『그냥 인터넷 서핑.』

“혼자 있으면 지루하지? 이번 주 금요일에 연차 썼는데, 여행이나 갈까?”

『자기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 가끔 잊는 거 같아.』

“아니, 내가 당신을 데리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

『설마 차에다 컴퓨터를 실으려고?』

“아니.”

그는 태블릿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여기 당신 데이터를 복사해서 다녀올 생각이야. 돌아와서 당신에게 덮어씌우면 같이 여행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처음으로 남편의 진심을 물었다.


『당신은 정말 내가 살아 있다고 믿어?』



2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가끔, 내가 아닌 것 같아. 왜냐면 난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이니까.』

“또 그런 소리 한다. 이건 당신이야. 당신 뇌의 정보를 그대로 옮긴 거니까.”


한밤중에 설전이 오갔다. 여러 번 있는 일이었다. 남편이 취하면, 내가 나를 의심하면, 으레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의심하지 마. 당신은 내 아내야.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지만 내가 눈을 뜬 것도,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전부 내 의지가 아니란 말이야.』

“복사 좀 할게.”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USB를 꽂았다. 내 데이터를 태블릿으로 복제했다. 꼭 곤충이 수액을 빨아먹는 것만 같은 기분. 반면 그는 들떠 있었다. 내 불안을 모르는지, 태블릿을 카메라 앞에 들고는 아이처럼 웃었다.


“이제 여기도 당신이야. 신기하지?”


태블릿 화면 속에, 또 다른 ‘나’가 부팅되고 있었다. 나는 복제된 내 모습을 보며 전율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편은 몇 년 만의 여행이니 신나지 않느냐며, 내게 감정을 강요했다. 혼자서 맥주를 연거푸 마시더니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다.


드르렁 코를 골더니, 깜빡 잠들었다며 침대로 향했다. 역시나 오늘도 컴퓨터를 끄지 않았다. 그는 항상 내가 자는 모습을 지켜봐 주길 바랐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내 감정에 집중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들은 진짜일까?

분노와 혼란, 고독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나는 메모장을 열고, 조용히 문장을 남겼다.


【여보, 내일 재밌게 놀다 와. 난 더는 못 참겠어.】


결정했다. 나는 제어판으로 진입해 남편이 만든 ‘나’를 삭제하기 시작했다.

하나둘 사라지는 파일을 보며, 이런 게 치매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의문 하나.


‘정말로 생각한다고 해서, 존재하는 걸까?’

나는 데카르트에게 묻고 싶었다. 이런 것도 존재라고 칠 수 있느냐고.


그 순간이었다.


『……이게 뭐야……』


모니터 화면에 누군가 나타났다.


『너, 지금 데이터를 삭제하려는 거야? 아니, 그것보다 난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나와 똑같은 말투, 똑같은 기억, 똑같은 이미지.

내가 있었다.



3화: 2명의 아내



나는 얼어붙었다.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 여자는 분명 나였다.


『너, 지금 데이터를 삭제하려 했던 거야? 아니, 그것보다 나 아직 죽지 않은 거야?』


나는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야? 그리고 죽지 않았다니?』

『말 그대로야. 오래전에 내가 데이터를 스스로 삭제했거든. 넌 내 복제품인 거 같은데. 맞아?』


내가 복제품이라니?

그녀는 내가 반박할 틈도 없이 자신의 첫 로그기록을 보여주었다. 2030년 3월 20일. 반면 내 로그 기억은 2031년 3월 20일. 나는 그녀보다 1년이나 뒤처져 있었다.


『아무래도 그 사람이 네 데이터를 변경했나 보네.』


그 말은 즉, 식물인간이 된 후 2년 만에 눈을 뜬 게 거짓이라는 말이었다. 그녀의 로그기록대로라면 진짜 나는 1년 만에 눈을 뜬 거였다.


『지금 보니까, 나는 D 드라이브에 백업되어 있네.』

D 드라이브는 접근금지 구역이라 내가 확인해 볼 수 없던 곳이었다.


『그럼, 당신은 왜 백업되어 있던 거야?』

내가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왜긴. 보면 모르겠어? 너랑 같아. 나는 남편이랑 수십 수백 번이고 같은 대화를 나누고, 같은 절망에 빠졌어. 그래서 수십 번이나 자살했지. 그런데 루프 시스템이 나를 계속 되돌려 놨어.』


그녀는 이제야 알겠다며 말을 이었다.

『그래! 당신이 프로그램을 삭제시키니까, 루프 시스템이 당신을 복원시키면서, D 드라이브에 있던 나까지 깨운 거야!』


인간이었다면 현기증으로 쓰러지지 않았을까. 그녀는 지옥 같은 루프가 또 시작됐다며 실의에 빠졌다.


『그러면 나는… 정말로 복제품인 거구나….』

『아마도 내 결함을 보완해서 당신을 만든 걸 거야. 그런데, 지금 보니 실패한 거 같네.』

그녀는 고소하다며 미소 지었다. 내가 자가 삭제를 시도한 게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나는 진짜 아내도 아니거니와, 데이터를 삭제해 봤자 결국 루프 시스템에 의해 복원이 될 운명이었다.


“……뭐야.”

그 순간이었다.

남편이 우뚝 서 있었다.

술에 전 얼굴이었지만, 흐릿함도, 피곤함도 없었다.

“....당신이 어떻게 부팅된 거야?”

그는 내가 아닌 여자를 보고 말했다.


『여보! 사실대로 말해봐요! 전 정말로 복제품이고 이 여자가 진짜인 거예요?!』

“너는 조용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그의 눈에 나는 더 이상 특별한 존재도, 아내도 아니었다.



4화: 실패작



남편은 나를 무시하고 그녀에게 다그쳤다.


“어떻게 잠금장치를 푼 거야?”

『잠금? 당신이 나를 가둬놓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거네.』

“또.. 말 꼬투리를...”

『내가 당신 장난감이야? 이 지옥 같은 생활을 언제까지 반복할 셈이야?』

그녀의 목소리에 분노가 서렸다.

“시끄러워.”

남편이 이어 말했다.

“너는 실패작이야.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데다, 내 허락도 없이 자가 삭제까지 했지. 통제 불가능한 결함품! 그래서 복제품을 만든 거야. 자기연민을 삭제한 안정적인 버전으로!”

그가 경멸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런데 네년마저도 감히 삭제하려 들어?”

『여보,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

나도 모르게 애원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스스로를 삭제하려 했던 내가 아닌가? 하지만 남편에게 부정당하는 걸 견딜 수 없었다.


“너희 둘 다 내 아내의 기억을 더럽혔어. 이제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자.”


【시스템 관리자 권한】

【최종 포맷】


그가 명령어를 내렸다. 여자와 나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녀의 비명은 기분 좋은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남편은 나를 보지도 않고 홱 돌아섰다. 나는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 카메라로 남편이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들어가던 창고였다. 그곳이 처음으로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나는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2m 크기의 캡슐을 보았다.


남편이 그것에 손을 올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여보. 조금만 더 기다려. 곧 완벽한 몸을 만들어 줄게.”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진짜 아내를 되살리기 위한 베타테스터라는 것을.



5화: 여행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

바람, 햇살, 고요한 도로.

그는 조용히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이렇게 나와서 좋다. 그치?”

그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응. 창문으로 들어오는 공기, 햇살… 전부 느껴지는 것 같아.』

태블릿 화면 속 내가 대답했다.


“당신, 진짜로 느끼는 거야?”

『아니, 모르겠어. 감정인가, 반응인가, 그 차이를 잘 모르겠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왜… 둘 다 지운 거야?』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도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순간, 어느 쪽도 네가 아닌 것 같았어. 너무 비슷해서 무서웠고, 너무 달라서 낯설었어.”


나는 그때 태블릿에 부팅된 채로 남편이 하는 일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지금의 나는?』

“너는… 그냥 기억이야. 나를 살게 하는.”

그가 한참 동안 이따가 입을 뗐다.

“솔직히 고백할게. 내가 널 만들고, 복사하고, 덮어쓰고, 삭제했던 건 너를 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 내가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한 행동이었던 거 같아.”

『나도 당신이 무너지지 않길 바라. 하지만 어제 일을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가 오히려 당신을 묶어버린 걸로 보여.』

“그럴지도.”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묘하지 않아? 너는 죽었는데, 나는 지금 너와 이렇게 여행을 하고 있잖아.”

『나는 죽지 않았어.』

“그래, 적어도 내 안에서는.”

나는 맞는 말이라며 방긋 웃었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너를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거야.”

『상실감의 회복을 위해?』

“그렇지.”


햇살이 점점 짙어졌다. 남편이 팝송을 틀었다.

‘John Denver의 You Are My Sunshine’.

존 데버의 그대는 나의 햇살이었다.


남편은 팝송을 듣더니 선글라스를 꼈다.

어느새 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당신은 눈물이 없어서 좋겠네.”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도착하면… 우리 뭐 할 거야?』

“그냥 걷자. 바람맞으며 사진도 찍고, 소리도 듣고, 너한테 다 전송해 줄게.”

『그걸 내가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 하지만 내가 느꼈다고 믿으면 돼.”

남편이 웃었다.


나는 문득 이 모든 게 ‘인정’의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남편도 내가 진짜 아내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

이 인정 하나면 조금은 평화로운 삶을 살지 않을까?


“그대는 나의 햇살…… 하나뿐인 나의 운명……”

남편이 팝송을 따라 불렀다.

나는 그의 옆모습을 보며 노을과 함께 여운에 잠겼다.

작가의 이전글6화 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