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작가는 몸을 고생시키고, 부자 작가는 머리를 고생시킨다
가난한 작가와 부자 작가의 차이는 '뇌지컬'에 있다.
평범한 스포츠 선수와 우수한 스포츠 선수의 차이도 '뇌지컬'에 있다.
게임도 마찬이다. 내가 하는 게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차이를 만들어낸다.
곧,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뇌지컬'이 바쳐주지 않으면 '피지컬'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난한 작가는 뇌지컬을 전혀 쓰지 않는다. 내가 지금 쓰는 장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지 않고 무작정 피지컬만 소비한다. 그리고 하는 말은, "사람들이 내꺼는 잘 안 읽어."라고 말한다.
생각해보자.
요리를 해도, 주식을 해도, 단순 알바를 해도, 우리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 '이해도'부터 높인다.
음식을 맛잇게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의 특성이나 원리를 이해 하거나, 주식을 할 때는 기업의 재무상태나 거래량을 본다.
블로그를 쓸 때도, 사람들이 편하게 보게 하는 어투가 있는가 하면,
유튜브에 썸네일을 어떻게 제작해야 어그로를 끄는지 법칙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가난한 작가는 이러한 장르적 특성이나, 패턴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다.
머리가 무식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격언을 실천하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특히' 책을 읽지 않는다.
분석도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
이 작품이 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찾기전에, 내 취향이 아니라고 말한다.
뇌지컬을 사용하지 않는 전형적인 가난한 작가의 패턴이다.
필자는 오래전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보고는, 정말 이 영화는 클리셰의 떡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가난한 작가는 클리셰만 나오면 거부감부터 가진다. 혹은 창의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더 가난해진다.
창작물에서 '클리셰'는 상품을 파는 기업이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과 같다. 독자의 기대, 재미, 흥분, 궁금증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그래야 많이 팔리고, 재구매를 하듯 연독을 하기 때문이다.
독창성과 창의성은 클리셰와 무관하다.
이 근본적인 원리를 알아야만 가난한 작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도, 뇌지컬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창작보다 피지컬 100에 나가는 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