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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라


■ 원문 번역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싸움할 때는 태양을 등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만약 지형이나 상황상 태양을 등질 수 없다면, 될 수 있는 한 태양이 오른쪽에서 비추도록 위치를 잡아야 한다. 어두운 밤이나 실내에서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불빛을 등지는 자리를 선점해야 한다.

빛을 등진 자리에 서면 적이 뒤를 공격하기 어려운 동시에 왼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여 오른쪽에서 적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능하다면 적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적의 기세를 눌러 심리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니, 이는 높은 사람이 상석에 앉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도망치는 적을 추격할 때는 적을 자신의 왼쪽으로 몰아 벽이나 모서리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적의 퇴로를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적이 불리한 곳에 몰린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쉴 새 없이 계속해서 몰아붙여야 한다.


적이 건물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문지방, 문틀, 미닫이문 같은 곳이나 기둥, 병풍 등 장애물이 있어 공격 자세를 취하기 어려운 곳으로 적을 몰아넣은 후, 적이 주위를 살필 겨를 없이 밀어붙여야 한다. 이처럼 장소가 지닌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활용하면, 싸움에서 손쉽게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 창작에 활용하기


1. 빛을 등지는 자, 시각적 우위 확보

무사시는 '태양을 등진 자리를 차지하라'라고 했다. 이는 단순히 눈부심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는 전술이다. 빛을 등진 자는 적의 모든 움직임을 명확히 볼 수 있지만, 적은 역광 때문에 아군의 칼날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다.

창작에서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 석양 결투: 위치 선점의 심리전

한 검객이 결투 약속을 잡는다. 그가 제안한 시간은 해 질 녘, 장소는 서쪽으로 트인 언덕이다. 상대는 시간과 장소에 의문을 품지만, 명예를 중시하는 무인이기에 흔쾌히 받아들인다.

결투 당일, 먼저 도착한 검객은 서쪽 언덕을 등지고 자리를 잡는다. 뒤늦게 도착한 상대는 검객을 마주 보기 위해 자연스럽게 서쪽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게 된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붉게 타오르는 석양이 상대의 시야에 들어온다. 눈을 찌푸리며 검을 뽑지만, 역광 속에서 상대의 칼날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결투 전개


1단계: 검객이 천천히 움직이며 상대를 더욱 눈부신 위치로 유도한다.

2단계: 상대가 위치를 바꾸려 하지만, 함부로 움직이면 방어가 무너진다.

3단계: 눈부심과 싸우는 상대 vs 명확한 시야의 검객

4단계: 결국 역광으로 인해 번뜩이는 칼날을 미처 보지 못하고 쓰러진다.


이것이 바로 빛을 활용한 승리다. 따라서 상대가 주인공보다 모든 것이 우위에 있다면? 이렇게 태양이나 빛을 써서 지형지물을 이용해 극적으로 승리를 따는 것으로 하자. 그러면 전투에는 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킬 수 있다. 또 대규모 전투에서도 전략이 열세일 때 태양을 등지게 만들어 전투에 우위를 가져가게 할 수도 있다.


▶ 야간 암투: 불빛 조작

무협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어두운 밤, 객잔 방에서 쉬고 있던 주인공에게 암살자가 습격해 온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범인(凡人)이라면 본능적으로 촛불을 끄려 할 것이다. 하지만 무사시의 원칙을 아는 고수는 다르게 행동한다. 오히려 촛불의 위치를 조정한다. 자신은 어둠 속에 숨고, 촛불은 암살자 쪽을 비추도록 배치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려보자.


주인공이 객잔 방에서 쉬고 있다. 창문이 열리며 자객이 들어온다. 보통의 무사라면 즉시 검을 뽑고 맞서거나 촛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싸울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다르게 대응한다. 그는 방 한가운데 탁자 위에 있던 촛불을 자신의 오른쪽 뒤편, 병풍 근처로 미리 옮겨둔다. 그리고 자신은 빛이 닿지 않는 구석진 그림자 속에 자리를 잡고 검을 쥔다.

드디어 자객이 문을 박차고 들어선다. 자객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방 안의 유일한 빛인 촛불로 향한다.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자객의 눈에 촛불은 강렬한 섬광과도 같다. 반면, 빛을 등지고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주인공의 눈에는 촛불 빛을 정면으로 받는 자객의 표정과 칼끝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자객이 눈부심에 찡그리며 헛손질하는 찰나, 어둠 속에서 주인공의 검이 빛을 가르며 날아온다.


▶ 실내 결투: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활용

좁은 방에서 결투가 벌어졌다. 양쪽 모두 검을 뽑았지만, 방이 좁아 크게 움직이기 어렵다. 이때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온다면?


고수는 재빠르게 창문을 등지는 위치로 이동한다. 그러면 상대는 자연스럽게 창문 쪽을 바라보게 되어 눈이 부시고, 좁은 공간이라 위치를 바꾸기도 어렵다. 고수는 천천히 압박하며 상대를 창문 바로 앞까지 몰아넣는다. 햇빛이 정면에서 쏟아지자 상대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다. 바로 그때 일격을 날린다.


핵심은 '빛의 위치를 읽고 활용하는 능력'이다. 초보는 상대의 검만 보지만, 고수는 태양의 위치, 촛불의 방향, 창문의 각도까지 계산한다.


▶ 판타지 적용: 빛

판타지에서는 빛을 마법으로 조작할 수 있다. 이를 전투에 활용해 보자.

성직자가 악마와 맞서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성직자가 성광을 시전 하되, 악마를 직접 공격하는 대신 자신의 등 뒤 높이, 마치 후광처럼 거대한 빛의 구체를 띄운다. 그러면 악마는 성직자를 바라보지만, 정면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빛 때문에 성직자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게 된다.


성직자는 빛 속에서 천천히 이동하며 악마를 혼란시킨다. 악마가 공격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모르니 빗나간다. 결국 성직자는 악마가 지친 틈을 타 악마를 소멸시킨다.


혹은 반대로 어둠 마법사가 이를 응용할 수도 있다. 상대 주변을 어둠으로 감싸되, 한 지점에만 희미한 빛을 띄워 마치 그곳에 자신이 있는 듯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상대는 어둠 속에서 그 빛을 보고 공격하지만, 실제로는 빛의 환영일 뿐이다. 마법사는 다른 곳에 있다. 이것이 바로 빛을 역이용한 기만술이다.



2. 고저차(高低差)로 싸움을 지배하라

무사시는 '적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높은 자리는 단순히 물리적 이점뿐만 아니라 심리적 우위를 준다. '높은 사람이 상석에 앉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표현이 이를 잘 보여준다.


▶ 계단 싸움: 시야와 타점의 불균형

검객 둘이 좁은 계단에서 마주친 상황을 떠올려 보자. 한 명은 위에서 내려오고, 한 명은 아래에서 올라간다. 계단 하나일지라도 때로는 이것이 승패를 결정짓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위에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검을 내려찍을 수 있다. 중력에 체중까지 실리니 파괴력이 배가된다. 반면 아래에 있는 자는 중력을 거스르며 검을 올려쳐야 하니 힘이 분산되고 속도도 느려진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시야'다. 높은 곳에서는 상대의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한눈에 들어와 빈틈을 찾기 쉽다. 하지만 아래에 있는 자는 상대의 하체와 검 끝만 보일 뿐, 정작 중요한 어깨의 움직임이나 시선 처리를 읽기 어렵다.


아래에 있던 검객이 불리함을 깨닫고 올라가려 해도 이미 늦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가 뿜어내는 '상석(上席)의 위압감'에 눌려 주춤하는 사이, 위에서 쏟아지는 검격을 막아내기에도 급급해진다. 결국 아래에 있던 검객은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못 해보고 내려찍는 검에 베이고 만다. 계단 하나, 단 몇십 센티미터 차이가 생사를 가르는 것이다.


이는 손자병법에도 나오는 것으로 유리한 ‘고지 선점’과 같은 맥락이다. 고지에서는 시야가 트여 원거리 공격을 하기가 좋다. 또 적은 체력을 써가며 고지대로 올라오기 때문에 적보다 체력적으로 우위에 선다. 이처럼 대규모 전투에서든, 일대일 전투에서든 높은 곳을 선점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 지붕 결투: 기와 위의 사투

무협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지붕 위 대결이다. 이때도 '고저차(高低差)'를 활용할 수 있다.

두 검객이 기와지붕 위에서 싸운다. 한쪽은 지붕 꼭대기(용마루)를 차지하고, 한쪽은 경사진 곳에 서 있다. 꼭대기에 선 자는 평평한 곳을 딛고 있어 하체가 단단하게 고정된다. 하지만 경사진 곳의 자는 미끄러지지 않으려 발목과 종아리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니, 검을 휘두르는 동작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주인공 시점에서 그려보자. 주인공이 적에게 쫓겨 지붕 위로 도망친다. 적이 따라 올라오자 주인공은 재빠르게 가장 높은 용마루를 선점한다. 적은 미끄러운 기와 사면에 위태롭게 서서 주인공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주인공은 여유롭다. 단단한 평지를 밟은 듯 자세가 안정적이니, 체중을 실은 강력한 참격을 날릴 수 있다. 반면 적은 주인공의 검을 받아내는 순간, 발디딤이 불안해 몸이 뒤로 밀린다. 결국 자세가 무너진 적이 빈틈을 보이자 주인공의 일격이 적을 관통한다. 발을 딛고 선 위치 하나가 전세를 뒤바꾼 것이다.



▶ 절벽 대결: 벼랑 끝의 싸움

절벽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떠올려 보자. 한쪽은 넓은 평지에, 한쪽은 절벽 가장자리에 서 있다.

절벽 끝에 몰린 자는 낭떠러지라 후퇴할 수 없다. 게다가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면 떨어진다'라는 두려움에 몸이 경직된다. 반면 평지에 선 자는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 앞으로 나가도, 옆으로 비켜도, 뒤로 물러나도 문제없다. 심리적으로도 여유롭다.


이것을 역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주인공이 일부러 적을 절벽 가장자리로 몰아넣는 것이다. 주인공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갈수록 적은 스스로 위축되어 뒷걸음질 치다가 균형을 잃고 절벽 아래로 추락한다.

높이의 차이는 단순한 물리적 조건이 아니다. 높은 곳에 선 자는 안정감을 얻고, 낮은 곳에 선 자는 불안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고저차를 활용한 심리전'이다.



▶ 판타지 적용: 공중전의 고저차

하늘을 나는 몬스터와 싸우는 기사를 생각해 보자. 몬스터는 하늘을 날고, 기사는 땅에 서 있다. 당연히 몬스터가 유리하다. 위에서 쏟아지는 공격이 피하기 어렵고, 기사의 창은 위로 던져야 하니 힘이 약하다.

그렇다면 기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성벽 위, 탑 꼭대기, 높은 산 위로 올라가 몬스터와 비슷한 높이를 만든다. 그러면 적어도 고저차로 인한 불리함은 사라진다.


혹은 마법사라면? '비행 마법'을 써서 몬스터보다 더 높은 고도를 점유할 수도 있다. 그러면 역으로 몬스터를 내려다보며 공격할 수 있다. 몬스터가 당황하며 높이 올라오려 하지만, 마법사는 계속 더 높이 올라가며 화염 마법을 퍼붓는다. 결국 몬스터는 위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추락한다. 높이를 제압하는 자가 전투를 제압하는 것이다.





3. 적을 몰아넣는 기술

무사시는 적을 ‘자신의 왼쪽으로 몰아 벽이나 모서리 쪽으로 유도하라'라고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대부분의 사람이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이다. 칼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오른쪽 공간이 비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적을 자신의 왼쪽으로 몰아붙이면? 적이 칼을 휘두르려 할 때 칼이나 팔꿈치가 벽에 부딪혀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게 된다.


또 오른손잡이는 본능적으로 오른쪽 공간이 확보되어야 안정감을 느낀다. 주력인 오른팔 쪽에 장애물이 생기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내 무기가 막혔다'라는 공포를 느껴 당황하게 된다. 무사시가 강조한 ‘계속 몰아붙여라’는 적이 이 불편함의 원인을 깨닫고 자세를 고쳐 잡을 시간을 주지 말라는 의미이다.



▶ 골목 추격전: 의도된 막다른 길

자객이 암살에 실패하고 도망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때 주인공은 무작정 달리는 것이 아니라 교묘한 '몰이'를 시작해야 한다.


자객이 넓은 공간(오른쪽)으로 빠지려 할 때마다 암기를 던지거나 검기를 날려 그 길을 막는다. 자객은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이 유도하는 좁은 길(왼쪽)로 방향을 틀게 된다. 이때 주인공은 쉴 새 없이 몰아붙여 적이 상황을 판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막다른 곳에 도착한 자객. 주인공과 대결하기 위해 돌아서자. 오른쪽 벽이 막혀버린 채다. 칼조차 제대로 뽑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 탑에서의 전투

적이 검을 쥐고 나선형 탑 내부를 올라간다고 생각해보자. 탑을 올라가려면 계단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올라간다. 이때 아군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검을 내리친다면?

적이 왼손잡이가 아닌 이상 공격을 막을 수 없다. 이유는 오른쪽에 기둥이 있어서, 검을 쥔 팔을 뻗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선형탑은 모두 방어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설계된 것일까?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질적인 역사적 사료가 없다. 군사적 목적보다는 건축의 편의성을 위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에 써먹지 않을 이유도 없다. 탑의 구조를 이용한 전투를 통해 주인공이 승기를 잡는 스토리를 생각해 보자. 주인공이 영주라면? 혹은 건축 설계자라면? 방어의 이점을 살리기 위한 나선형 탑을 만드는 것이다.

아니면 아군이 탑을 올라가면서 전투를 치러야 하는데, 방어적 이점을 살린 나선형 탑으로 인해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 이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장검 대신 단검을 가지고 싸워도 좋지만, 이렇게 할 수도 있다. 대지의 마법사가 계단의 구조를 반대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시계 방향으로 올라가야 하는걸, 반 시계 방향으로 바꾼다.

그로 인해 아군은 제약 없이 편하게 검을 휘두르는 반면, 적군은 팔이 벽에 막혀 피해를 입거나 왼손으로 검술을 펼치기 때문에 전투력이 떨어지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이외에도 15세기 스코틀랜드 보더스(Borders) 지역을 지배했던 커 가문은 유난히 왼손잡이가 많았다. 그래서 신체적 특징 때문에 성의 계단을 시계 반대 방향 설계했다. 무론 이건 카더라 통신이니, 스토리를 이런 식으로도 할 수 있다는 걸로 참조하자.


▶ 강가 대결: 물가로 내몰기

강가에서 싸움이 벌어지자 주인공이 적을 천천히 물가 쪽으로 몰아넣는다. 주인공이 거칠게 압박할수록 적은 더 밀려나면서 물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이제 적은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다. 물속에서는 발이 불안정하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물의 저항을 받기 때문이다. 반면 주인공은 마른땅에 서서 여유롭게 공격한다. 적은 물속에서 버둥대다 결국 균형을 잃고 칼을 놓친다.


지형의 차이가 승패를 가른 것이다. 실력이 비등하더라도 한쪽은 마른땅에, 한쪽은 물속에 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 판타지 적용: 함정 지역으로 유도

던전에서 파티가 오크 떼와 마주쳤을 때, 오크의 숫자가 너무 많아 정면 승부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경험 많은 도적이 던전 지도를 떠올리며 앞쪽 복도 어딘가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면, 골목 추격전과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전사가 오크들을 도발하며 천천히 후퇴하면, 분노에 가득 찬 오크들이 앞만 보고 따라온다. 이때 마법사가 화염 마법으로 오크들의 퇴로를 막아 특정 방향으로만 가게 만들면서 함정이 설치된 곳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다. 순간, 바닥이 열리며 오크들이 아래로 떨어진다. 오크 대부분이 죽고, 살아남은 몇 마리는 파티가 처리한다.


이것이 바로 지형을 활용한 전술이다. 정면으로 이길 수 없다면, 지형을 이용해 적을 함정으로 유도하라.






4. 장애물을 무기로 만들어라

무사시는 '문지방, 문틀, 기둥, 병풍 등 장애물이 있어 공격 자세를 취하기 어려운 곳으로 적을 몰아넣어라'라고 했다. 이는 '좁은 공간에서의 싸움 기술'을 말하는 것이다.



▶ 문지방의 함정

문지방이란 문 아래 있는 낮은 턱이다. 고작 몇 센티미터지만, 싸움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 우리도 실생활에서 느꼈을 것이다. 새끼발가락이 문지방에 걸려 고통스러웠던 일,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걸려서 넘어질뻔한 적도 있다. 하물며 정신없이 싸우는 전투 중에는 어떨까?


주인공이 적을 문 쪽으로 몰아넣으면, 적은 뒤로 물러나다 문지방에 발이 걸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게 된다. 바로 그 찰나에 주인공의 검을 휘두른다. 문지방은 단순한 턱이 아니라 '균형을 무너뜨리는 함정'이다.


혹은 이렇게도 쓸 수 있다. 여러 개의 방이 연결된 가옥 구조에서 적과 싸우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주인공이 방 안에서 적과 싸우다가 일부러 뒷걸음질 치며 다음 방으로 이동한다. 적은 주인공이 밀린다고 판단하고 추격하는데, 이때 주인공은 문지방을 넘기 직전에 멈춰 선다. 적은 기세를 몰아 쫓아오다가 문지방을 넘는 순간, 작은 턱에 발끝이 걸려 몸이 앞으로 쏠린다. 주인공은 바로순간, 자세가 무너진 적을 향해 반격을 가한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도 이렇게 '작은 함정'을 활용하는 것이다.



▶ 좁은 복도: 검을 휘두를 수 없는 공간


넓은 공간에서는 크게 휘두를 수 있기 때문에 긴 검이 유리하다. 하지만 좁은 복도에서는?

주인공이 긴 검을 든 적과 싸울 때, 넓은 곳에서는 불리하니 일부러 좁은 복도로 유도한다. 적이 따라 들어와 검을 크게 휘두르려 하지만, 비좁은 복도 양쪽 벽이 가까워 검이 벽에 부딪히고 만다. 공격 흐름이 끊긴 적은 당황한다.


반면 주인공은 짧은 칼을 쓰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찌르고 베어낸다. 적은 긴 검 때문에 불리해져 결국 주인공 공격에 무너지게 된다. 이렇듯 공간에 따라 유리한 무기가 다르다는 점, 기억하자.



▶ 판타지 적용: 좁은 통로

던전 통로는 좁다. 보통 한두 명만 지나갈 수 있다. 이것을 전투에 활용해 보자.

오크 무리가 쫓아오면, 파티는 도망치다 좁은 통로로 들어가고 방어력이 높은 전사 한 명이 통로 입구를 막고 선다. 오크들이 달려들지만 좁은 통로라 한 번에 한 마리씩만 올 수 있어서 전사는 일대일 상황을 유지하며 버틸 수 있다. 그 뒤에서는 마법사가 화염 마법으로 지원한다. 오크들은 숫자가 많지만 좁은 통로 때문에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결국 파티가 승리한다.


이것이 바로 '테르모필레 전술'이다. 기원전 480년,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정예병이 페르시아의 수십만 대군을 '테르모필레(Thermopylae)'라는 좁은 협곡에서 막아낸 전투에서 유래한 전술로 지형의 이점을 활용하면 소수로도 다수를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영화 <300>에서 이 전투를 다루기도 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장비가 장판파라는 다리를 홀로 지키기도 했다.






5. 통합 전술: 빛, 높이, 공간을 동시에 활용하라

지금까지 빛, 고저차, 공간 몰이, 장애물 활용을 각각 설명했다. 하지만 진짜 고수는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활용한다.



▶ 완벽한 결투 설정

주인공과 악당의 최종 결전을 생각해 보자. 단순히 평지에서 맞붙는 것이 아니라 무사시의 원칙을 모두 적용한 장소를 설정하는 것이다.


장소: 절벽 꼭대기, 석양이 지는 시간, 주변에 큰 바위들이 있는 곳

빛: 주인공은 서쪽에 서서 지는 해를 등지고, 악당은 동쪽에 서서 해를 마주 본다.

고저차: 주인공은 약간 높은 바위 위에, 악당은 평지에 선다.

공간: 악당의 뒤쪽은 절벽이라 후퇴할 수 없다.

장애물: 주변 바위들로 인해 악당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싸움이 시작되면?

악당은 정면에서 비추는 석양 때문에 눈이 부시다. 주인공보다 낮은 곳에 서 있어 위를 올려다봐야 한다. 뒤는 절벽이라 물러날 수 없다. 주변 바위 때문에 크게 움직이기도 어렵다.


반면 주인공은 모든 것이 유리하다. 석양을 등져 시야가 명확하다. 높은 곳에 서서 내려다본다. 앞뒤 좌우 어디든 움직일 수 있다. 결과는 뻔하다. 악당이 아무리 강해도, 이 조건에서는 이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조건을 최대한 활용한' 완벽한 전투 설계다.


▶ 객잔 최종 결투

무협 소설 클라이맥스를 생각해 보자. 객잔 2층, 좁은 복도에서 최종 대결이 벌어진다.

주인공은 빛이 들어오는 창문 쪽에 서고(빛을 등짐), 적은 복도 안쪽에 선다(역광을 받음). 주인공은 계단 위쪽에 자리 잡았고(고저차 확보), 적은 막다른 복도 끝에 몰려 있다(퇴로 차단). 주변에는 기둥과 난간이 있어(장애물 활용)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다.


싸움이 시작되자 적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 때문에 주인공의 검이 잘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천천히 압박하며 적을 복도 끝으로 몰아넣고, 적은 뒤로 물러나다 기둥에 부딪히거나 난간에 걸려 넘어질 뻔하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결국 적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벽 앞까지 밀려나고, 빈틈을 노린 주인공의 마지막 일격이 날아오자 적은 막아낼 방법이 없어 쓰러지고 만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단순히 힘만으로 이긴 게 아니라, '조건을 완벽하게 통제'해서 승리한 것이다.






6. 역발상: 불리한 조건을 역이용하라

지금까지는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법을 설명했다. 하지만 때로는 일부러 불리한 조건을 만들어 적을 유인할 수도 있다.



▶ 함정으로서 역광

주인공이 석양을 정면으로 보는 자리에 선다. 적이 보기에 주인공은 불리한 위치다. 적은 '이긴다'라고 생각하며 공격해 온다. 하지만 이것은 함정이다.


주인공은 이미 역광에 익숙해진 상태다. 그리고 적이 다가오는 순간, 재빠르게 위치를 바꾼다. 이제 적이 석양을 마주 보게 된다. 갑자기 눈이 부신 적이 당황하는 틈을 타 주인공은 공격을 가한다. 일부러 약점을 보여 적을 유인한 뒤, 결정적인 순간에 역전시키는 전술이다.





7. 마무리

무사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장소가 지닌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활용하면, 싸움에서 손쉽게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빛의 방향, 바닥의 높낮이, 벽과 기둥의 위치, 문과 창문의 각도. 이 모든 것이 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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