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몸도 마음도 아픈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 생각해
책장을 찾다가 우연히 동생이 쓴 일기를 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반년 정도 된 때였다.
거기에 쓰인 말이 있었다.
"언니가 제발 철들게 해주세요. 자기가 혼자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안하게 해주세요"
스물 한살의 나는 반쯤 미쳐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엄마와 동생을 위해서 슬픈 내색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내가 아버지 대신으로 엄마와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학생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너무 좋았다. 그냥 나는 대학생이다라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배움, 새로운 세계. 그곳에서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나는 사실 수능보기 일주일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도 꽤나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동생이 보기엔 복에 겨워 보였나보다. 내가 성인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좀더 많이 해서 돈을 벌고 조금은 자유롭게 쓰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 동생 말대로 정말 철이 덜 들었었다보다. 나는 누구보다도 애늙은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세상 살아왔는데 내 동생 앞에서는 사춘기 소녀같은 그런 철부지였구나.
동생이 야자가 끝나고 배가 너무 고픈데 사먹을 돈이 없어서 친구들에게 한 입씩 얻어먹었고 서럽다는 글을 보니 눈물이 나왔다. 나는 계단에서 삼각김밥 하나와 우유를 먹고 서글프다 생각했는데, 나는 나의 아픔과 서러움만 생각하고 동생을 보듬지 못했다.
철부지 스물 한살. 미안해. 나만 우리집에서 가장 힘들다 생각했어. 그런데 그거 알아? 우리 가족 다 각자 그랬던거 같아. 내가 가장 힘들고,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여유가 아무도 없었어. 하지만 그래도 미안해. 내가 좀 더 철이 들었었다면 네가 이렇게 떠나지 않았을까? 네가 덜 아프게 지낼 수 있었을까.
그래도 너의 기도가 닿은 것인지 중간에 내가 정신차리고 너를 돕기로 결심했지. 너도 알겠지만 사실 온전히 너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어. 그냥 학교 다니면서 돈을 버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 그리고 막연한 미래도 너무 무서웠어. 내가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벌면서 학교를 다니고 졸업한다고 해서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하는 끝없는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켰어.
누구는 어학연수를 가고, 누구는 여행을 가고 나도 그런거 해보고 싶었지만, 난 그냥 하루를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어. 그리고 철부지가 없었지만 너에게 최소한의 언니로서의 도리를 해야겠다 생각한 것도 사실이야.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너를 정말 도와주고 싶었어. 학교를 보내고 싶었어. 진심이야. 그건 알지. 어쩄든 그냥 나도 무서웠던거야. 그래서 학교를 쉬고 돈을 벌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너를 위해 그랬다고 큰 의미를 부여했어. 그리고 그것으로 너에게 자꾸만 나의 희생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싶다고 괴롭게 했어.
미안해. 이기적이어서 미안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