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단어. 터닝포인트

아이러니

by 아로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모든 면에서 의심이 많다. DISC나 MBTI, 아니 혈액형 별 성격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 분야에 대한 이론을 잘 알고 있는 강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야 강의는 하지 않는다. 성격은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충분히 통제와 변형 가능한 요소라고 생각하기에 누군가의 성격을 하나로 단정 짓는 것 자체가 맘에 안 든다.

어쩌면 성격유형분석 결과마저도 일부는 본인들이 의식하고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닐까?






어느 날은 점을 보러 갔는데 한 무속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언니는 어차피 내가 하는 말 믿지도 않을 거면서 왜 왔어? 그냥 언니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서 온 거잖아?”


그 무속인 말이 맞다. 나의 의심은 그들의 세계라고 다를 게 없다. 사주는 단순히 데이터일 뿐이고, 그게 어쩌다 잘 맞다 하더라도 그냥 신기한 게 전부다.


나 역시 직업 특성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이젠 반 보살이나 다름없을 만큼 상대방에 대한 스캔 능력이 꽤 뛰어난 편인데, 그들도 그냥 그 정도겠거니. 그걸 알고 있음에도 호기심 삼아 매년 신년운세를 보러 간다. 이유는 단순하다. 왜냐면 재미있으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신년운을 봐주던 그 무속인이 “어차피 자기 말은 믿지도 않을 거면서 왜 왔냐?” 고 하는 그 말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그 점쟁이 아니, 무속인의 말을 믿어버릴 뻔했다.

사실 처음부터 사람을 잘 믿지 않거나 의심을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사람 믿기 대회가 있었다면 순위권 안에는 무조건 들었으리라 장담할 만큼 사람을 잘 믿었다.


엄마가 암 투병 중인데 수술비 정산금액이 부족하다고 울면서 전화해 돈 빌려 간 친구, 오늘 방값 내는 날인데 월급이 아직 안 들어와서 내일모레 월급 들어오면 주겠다고 방값 좀 빌려달라던 친한 오빠, 지갑을 깜빡하고 안 가져왔다고 집 가면 줄 테니 술값 좀 대신 결제해 달라던 옆 테이블의 회사 동료.


물론 그 돈들은 당연히 받지 못했다. 결론은 나의 이 의심병과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버릇은 내 곁을 스쳐 지나간 인간관계에 의해 학습된 후천적 성격이란 얘기다.

제삼자의 눈에 비친 내 인생은 어떨까? 학창 시절부터 나의 곁을 지키고 있는 내 절친 은정이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로야, 네 인생에는 어떻게 지름길이 하나도 없냐. 진짜…”

그 말을 듣는데 머릿속엔 단 두 글자만 떠올랐다. ‘젠장…’



남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친구의 말대로 내 인생 모든 순간은 순탄함이란 없는 롤러코스터였다. SNS로 보면 희극이고, 직접 들여다보면 비극이 천지빼까리인 게 인생이라나? 내 삶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20대가 되면서부터는 롤러코스터에 가속도까지 붙어 더욱이 지루할 틈 하나 없는 레일 위를 달렸다.


신기한 것은 상승지점과 낙하지점에 항상 사람이 있었다. 사람 덕분에 꽃밭도 구경해 봤다가, 사람 때문에 암흑 길도 걸어봤다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껏 내 삶에서 일어난 일 중 쓸모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었다. 저마다 시간 속에서 매번 새로운 것들을 얻고, 깨달아가며 여기까지 왔다. 그 시간을 걸어 나올 때마다 똑같이 느낀 한 가지는 바로 ‘사람을 믿지 말자.’였다.

‘믿지 않는다.’라는 말의 반대말이 ‘싫어한다.’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좋아하면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믿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다른 어떤 것들을 기대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실망하는 일도, 누군가에게 상처받는 일도 확실히 줄어든다.


돈을 빌려 갔으니 분명 갚을 거라는 믿음, 이 사람은 무조건 내 편이라는 믿음, 이 비밀은 끝까지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 이 모든 믿음은 상대가 아닌 결국 나의 기대에서 나오는 감정일 뿐이다.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 많은 베타테스트의 시간이 걸렸다. 믿음을 줄이면 상처받는 일이 적어진다는 확신이 생긴 지금은 상처받지 않으려고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 의심(나에게 의심이란,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한 번 더 생각하는 행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던 20대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30대를 살고 있다. 그로 인해 나의 인간관계는 아주 많이 좁혀졌지만, 좋은 게 있다면 그 덕에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불필요하게 낭비해 버린 나의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이제는 많이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간관계는 넓히는 것이 아니라, 잘 좁히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관계에 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진 지금의 나 역시 무작정 관계를 넓히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보여지는 모습과 조건에 관심을 보내는 불특정 다수 보다 진짜 나를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소수의 사람들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더 많은 것을 누릴 때 오는 것이 아니다. 진짜 행복은 더 이상 제거할 불편 요소가 없을 때 찾아온다. 많은 사람이 나와 함께 해줄 때 보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때. 그때 비로소 내 인간관계는 완벽해진다고 믿는다.


연연하지 말고 최대한 단순하게. 의존하지 말고 최대한 의연하게. 그래서 나는 요즘 인간관계를 잘 좁혀나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그리고 상처 주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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