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고 먹고, 무서워서 잤다

기본적인 욕구조차 사치였던 시기

by 올해의 계란

휴학을 하고 가게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우리는 한동안 가게에서 먹고, 자고, 지냈다.

그 선택이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만드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그저 버티면 되는 줄 알았다.

그 시절의 나는
생각보다 많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사소한 말에도 눈물이 먼저 났고,
별 뜻 없는 한마디에도
괜히 화가 치밀었다.

가게에는 부모님 또래의 이모님들이 여러 명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힘들게
이 일을 해왔는지 보였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그걸 볼 여유조차 없었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밥을 먹다가도
울컥해서 짜증이 나고
눈물이 고였던 장면만 또렷하다.

안 울려고
괜히 매운 고추를 여러 개 집어 먹었다.

맵다고 하면
눈물이 나는 게 자연스러우니까.

그래도 티는 났던 것 같다.

그렇게 감정이 쌓이다 보니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3대 욕구 중
수면과 식욕은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잠은 깊지 않았고
먹는 건 즐거움이 아니라
그냥 생존에 가까웠다.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내일을 버티기 위해 먹었다.

그런데 그 ‘내일’이
하루하루 무서웠다.

기본 중의 기본인
‘맛’을 제대로 내지 못했을 때
손님들의 반응은 솔직했다.

공기가 금방 싸늘해졌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사회는 생각보다 냉정하다는 걸.

노력과 사정은
접시에 담기지 않는다.

맛이 없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가족은 내 편이라는 사실을.

밖에서는 냉정했지만
적어도 우리는 한 팀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이게 정말 내 편이 맞나 싶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화를 냈고
말이 거칠어졌고
상처를 주기도 했다.

떠날 수 없기 때문에
더 세게 부딪히는 관계.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계속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 같이 산전수전을 겪는 구조.

그렇다고 사이가 더 돈독해지지는 않았다.

그냥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일을 했을 뿐이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그 긴장과 압박은
결국 몸으로 먼저 나타났다.

어느 날
위경련이 왔다.

살면서 처음 겪는 통증이었다.
안에서 누가 쥐어짜는 것처럼 아팠다.
식은땀이 났고
숨이 얕아졌다.

그런데도 나는
서빙을 멈추지 못했다.

아프다고 말하면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없었다.

이를 악물고
웃으면서
계속 움직였다.

그때 처음으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나는 일이 힘들었다기보다
체계가 없어서 더 무너졌던 것 같다.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는
사람이 직접 시스템이 된다.

누군가는 감정을 누르고
누군가는 몸을 혹사시키고
누군가는 잠을 줄인다.

그렇게 메워진 빈틈은
언젠가 반드시
어딘가를 망가뜨린다.

내 경우에는
위장이 먼저 무너졌다.

그 시기를 지나며 알게 됐다.

사람이 무너지는 데
꼭 큰 사건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걸.

환기가 되지 않는 공간,
퇴근이 없는 하루,
끝나지 않는 대화,
생존을 위한 식사와
무서워서 맞이하는 내일.

그런 것들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
사람을 갉아먹는다.

나는 성격이 나빠진 게 아니라
오래 지쳐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일을 버티고 있었던 게 아니라
환경과 압박을 견디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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