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가게에서 일하며 서른이 된다는 것

부모의 삶을 함께 짊어진 채 나이를 먹는다는 것

by 올해의 계란

서른이 되었다는 사실은 어느 날 갑자기 실감났다.
주민등록증을 보거나 생일을 챙길 때가 아니라, 통장 잔고를 보면서였다. 나이는 분명히 서른인데, 내 삶은 여전히 부모의 가게 일정에 맞춰 돌아가고 있었다. 출근 시간도, 퇴근 시간도, 쉬는 날도 가게가 먼저였다.

부모님의 가게에서 일한다는 건 애매한 위치에 서는 일이다.
나는 직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히 사장도 아니다. 책임은 늘 사장처럼 지지만, 보상은 직원보다 못할 때가 많다. 그래도 불평하기가 어렵다. 부모의 생계가 걸려 있고, 가게가 무너지면 모두가 힘들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스무 살 초반에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가족 가게에서 일하며 배우는 과정이라고 믿었다. 친구들이 취업 준비를 할 때 나는 장사를 배운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땐 시간이 내 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간은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냥 흘러갔다.


서른이 되니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비교하게 된다.
누군가는 이직을 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혼자서도 생활을 꾸려간다. 나는 여전히 가게를 기준으로 하루를 계산한다. 오늘 장사는 어땠는지, 내일 재료는 충분한지, 이번 달은 조금 버틸 수 있을지.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유지가 먼저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깎이는 건 경제적인 자존감이다.
얼마를 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책임지고 있다는 감각이 점점 흐려진다. 월급은 있지만, 독립적인 수입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노력에 대한 보상인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정해진 금액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렇다고 부모를 원망할 수는 없다.

부모도 최선을 다해 가게를 지켜왔고, 나 역시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미워할 대상이 없다는 건, 결국 모든 감정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해와 책임 사이에서 마음이 자주 흔들린다.


부모의 가게에서 일하며 서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 것 같으면서도 아직 미완성인 느낌을 안고 사는 일이다. 책임은 충분히 어른의 몫인데, 선택지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 삶을 계속 유지할지 아니면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야 할지를 자주 고민한다.


이 글은 정답을 말하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다.
다만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게, 이 감정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전하고 싶었다. 부모의 가게에서 일하며 나이를 먹는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걸 참고, 미루고, 견뎌내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그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성실한 삶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다음 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적어보려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가족 식당에서 사장이 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