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는 배운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식당을 하던 초창기, 사람이 먼저 무너졌던 시간

by 올해의 계란

식당을 시작했을 때, 반년 정도는 가족 모두가 가게에 붙어살다시피 했다.

학교를 휴학하고, 집과 가게의 경계가 흐려진 채로 하루를 보냈다.

그 시기에는 체계도, 역할 분담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다.


레시피는 비용을 지불하고 배웠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나니, 배운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훨씬 많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동선이 있었고,

메뉴 하나를 내는 데도 생각하지 못했던 과정들이 줄줄이 따라붙었다.

우리는 준비된 상태라기보다, 그냥 현장에 던져진 느낌에 가까웠다.


그때 처음으로 겪어본 종류의 압박감이 있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

쉬지 못한 채 이어지는 긴 하루들.

심리적으로는 늘 몰리는 기분이었고,

신체적으로는 강도가 높은 피로가 쌓여갔다.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불안한 마음에 메뉴는 점점 늘어났다.

국밥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고,

무언가 더 준비돼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만큼 일의 강도도 세졌고, 현장은 더 복잡해졌다.

중심이 잡히지 않으니 손님 응대도 매끄럽지 못했다.


주인이 흔들리면, 가게 전체가 흔들린다는 걸

그 시절에 몸으로 배웠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우리 가족도 모두 허둥지둥했다.

누군가 게으르다기보다는,

다들 이 상황을 처음 겪고 있었을 뿐이었다.

초창기였고, 우리는 전부 오합지졸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는

실수와 혼란으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이후의 나를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배운 것과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체계 없는 현장이 사람에게 어떤 부담을 주는지,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는

실수와 혼란으로 가득했지만,

그런 종류의 배움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체계가 없다는 건 일이 서툴다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몸이 동시에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순간을 겪었다.

감당할 수 없다는 감각이 쌓이면

사람은 결국 어딘가로 튕겨 나가게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짧게나마 가출을 했다.

정확히는 3일.

웃으면서 말할 수는 있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로 어긋나 있었다.

그만큼, 초창기의 가게는 우리를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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