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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쁜파크 Sep 25. 2024

엑스텐을 찾는 아이, 경계를 찾는 엄마

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양궁 남자 개인 결승전은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5세트에서 대한민국 김우진 선수와 미국의 엘리슨 선수는 10-10-10 총 30점을 쏴서 결국 슛오프로 넘어갔다. 먼저 활을 쏜 김우진 선수는 10점 테두리에 걸쳤고, 뒤이은 엘리슨 선수도 10점에 걸쳤다. 엑스텐에서 각각 55.8mm, 60.7mm를 쏴서 대한민국 김우진 선수의 금메달이 확정됐다.


정중앙을 맞춰야 유리한 양궁과 달리 야구에서 투수의 경계를 강조하는 글을 만났다. 



좋은 투수는 스트라이크와 볼의 경계에 투구한다. 좋은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가벼운 고백> 김영민


좋은 투수는 스트라이크와 볼의 경계를 정확히 노리고, 좋은 예술가는 창의성과 제약의 경계에서 작품을 완성한다. 나는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었다. '좋은 엄마도 마찬가지다.' 


경계를 생각하던 시점에 딸의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1학기 동안 아이가 학교에서 지낸 모습, 성적 등을 설명해 주셨고, 집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물으셨다. 


"지금 중간고사이라 하교 후 독서실 갔다가 저녁 먹으러 집에 잠깐 들르고, 다시 가서 10시즘 오는 패턴으로 지내고 있어요. 밤에 돌아오면, 공부한 내용을 봐 달라고 합니다. 역사 교과서를 주면서, '오늘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 시대에 대해 외웠어. 한번 봐줘. 국어 <소나기> 했어. 내가 공부한 부분 말해 볼게.' 이런 식으로요."


"와~ 어머니. 제가 졸업생까지 통 틀어서 아직 이렇게 공부하는 친구를 보지 못했어요.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다시 말해 보는 좋은 기회이고, 보통은 어머님들이 봐주고 싶어도 아이들이 싫다고 하는데, OO가 먼저 봐 달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좋네요."



중2부터 본격적인 지필고사를 치르면서, 아이는 시험 기간만 되면 나를 괴롭혔다. 독서실에서 집으로 오면 늦은 밤 식탁에 앉아 내게 해당 교과서를 건네고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말한다. 그럴 때면 나는 괜히 '엄마 시험도 아닌데 왜 내가 잠 못 자고 책 봐야 돼. 엄마 피곤해서 빨리 자고 싶다고' 아이에게 구시렁대곤 했다. 


상담이 있던 날 아이는 담임 선생님께서 자신에 대해 뭐라고 하셨을지 궁금해했다. 엄마와 공부하는 것에 대한 선생님의 반응을 전했더니 아이가 웃는다. 


"그래! 앞으로도 엄마가 계속 잘 봐주는 걸로."

"으~~ 이 말 괜히 했네. 이건 말하지 말걸."


나는 또 한 번 튕기며 웃음으로 마무리했다. 사실은, 내심 흐뭇했다. 사춘기 아이가 엄마를 찾는 기회가 있으니까. 양궁처럼 정확히 가운데만 바라보고 아이를 키우려 했다면 아이는 나를 찾으려고 했을까. 아니, 엑스텐 같은 정확한 점을 내가 찾을 수나 있었을까. 


지지와 통제, 자율과 간섭의 경계에서 엄마는 고민하게 된다. 아이가 멀어지고 싶을 때는 자기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고, 도움이 필요할 땐 어렵지 않게 가족의 세계로 나올 수 있는 경계에 머무르고 싶다. 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너무 가까이 다가가거나, 너무 멀어지지 않는 경계를 찾는다. 이것이 경계의 균형이다. 


엑스텐을 찾아 활을 쏘는 일은 아이의 몫이다. 가장 자신다운 모습을 찾아 과녁을 겨루는 일을 내가 해서는 안 되지. 


(엄마가 좋은 투수가 되면, 넌 오타니처럼 홈런 50 - 도루 50 같은 새 기록을 써 줄거니? *^^* - 앞으로 너의 길에서 새롭게 써 내려갈 기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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