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상가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계산하려다 '엄마표 김밥'이라는 이름에 잠시 멈췄다. 아이들과 '엄마표 영어'를 해 오고 있는 학부모로서 '엄마표'를 교육이 아닌 마트에서도 만나다니. 결제한 김밥을 들고 나와 걸으면서도, 이 김밥을 먹으면서도 '엄마표'가 내내 머물렀다. 우리가 태어나서 자연스레 한글을 듣고 이해하며 말하게 되었듯이 영어도 영어영상과 영어책을 통해 자연스러운 노출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엄마표 영어'를 한다. 요즘은 '엄마표 영어' 뿐만 아니라, 엄마표 수학, 논술, 과학, 미술 등 '엄마표'로 하는 것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이걸 다 할 수도 없고 다 할 필요도 없지만, '엄마표'란 아이를 위한 부모의 마음, 그 영역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한다.
'엄마표'를 생각하며 김밥을 먹다가 내가 마지막으로 '울 엄마표 김밥'을 먹어 본 건 언제였는지 궁금했다. 첫째 임신으로 입덧하며 먹는 게 힘들었던 시기에 문득 엄마가 싸 준 짜지 않고 담백한 김밥이 먹고 싶었다. 떨어져 있는 엄마에게 전화로나마 그 마음을 말했더니 나중에 엄마집에 갔을 때 그걸 기억하시고 김밥을 싸 주셨다.
학창 시절 소풍 때만 먹을 수 있었던 김밥, 엄마는 늘 소풍 전날 밤에 김밥을 싸셨다. 저녁을 치우고 모든 집안일이 마무리되면 엄마와 친하게 지내는 동네 아주머니가 대나무 김밥 싸개, 도마와 칼, 김밥 담아 갈 그릇을 가지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저녁때가 한참 지난 늦은 밤에 밥솥에서는 새로 지은 밥 냄새가 다시 났고, 맛살은 비닐을 벗겨서 쭉쭉 찢어 놓고, 긴 분홍 소시지를 잘라 기름에 볶고, 노랗게 부친 달걀지단을 반듯하게 썰고, 시금치 묻히는 참기름 냄새가 풍기면서 소풍 전야제의 밤은 엄마와 친구분의 대화로 빠르게 흘러갔다. 대화 속에서도 김밥 마는 손은 빨라서 김밥 50줄이 우리 집 큰 쟁반에 피라미드처럼 쌓였다.
호일로 잘 덮어 둔 김밥은 소풍 당일 아침, 엄마가 보기 좋게 썰어 깨를 넉넉히 뿌린 후 할머니, 할아버지 상에 먼저 놓고 우리가 먹을 상에도 주셨다. 그리고 소풍 도시락을 챙기기 전에, 큰 접시를 꺼내서 3줄 정도를 썰어 담으셨다. "이거 똘똘이 집 드리고 와라." 나는 그 접시를 조심히 들고 마당을 지나 파란 대문으로 나가서 건물 뒤편을 통해 똘똘이 집으로 갔다. 가볍게 노크를 하고 들어가면 바로 부엌이 나오는데 신발을 신고 다니는 곳이라, 안방 문을 다시 노크했다.
똘똘이 아주머니가 누구냐고 안방 문을 열면 마침 안에서는 아침 식사 중이었다. 내 손에 놓인 접시를 보고 환하게 웃으시며, "아고, 매번 김밥을 가져와서 어떡하냐. 엄마한테 잘 먹겠다고 전해 줘잉." 언제 챙겨 나오셨는지 만원을 내 손에 쥐어 주시며 소풍 가서 잘 놀고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하셨다. 똘똘이 아주머니가 김밥을 옮겨 담으시면,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린 후, 우리 집 빈 접시와 만원을 손에 쥐고 파란 대문을 향해 돌아왔다. "아니, 애들 다 커서 김밥 드실 일 없으니까 맛 보시라고 조금 드린 건디 또 무슨 돈을 주셨대." 우리 도시락과 선생님 도시락을 챙기느라 엄마 손은 여전히 분주했다.
우리 집 7 식구도 먹고 주변에 나눠 주고 그날 할아버지 찾아오신 손님이 있으면 내어 드리고 소풍 다녀와서 저녁으로도 질리지 않게 먹고 나면 엄마가 싼 50줄의 김밥은 사라졌다. 똘똘이네처럼 엄마도 우리가 졸업 한 후로는 김밥을 싸시는 일이 없었고, 임신 때를 마지막으로 엄마표 김밥을 먹을 수 없었다. 대신 엄마표 김밥의 고스름한 냄새와 담백한 맛이, 소풍 전야제 분위기와 용돈 받는 심부름이 섞인 하나의 풍경으로 남았는지, 아이들 체험학습이 없더라도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김밥을 싼다. 그리고 근처에 엄마가 계실 때는 '할머니 김밥 드리고 오자.' 아이들과 함께 맛보시라고 가져다 드렸다.
가끔 반찬 고민을 하며 우리 딸들에게 뭐가 먹고 싶냐 물으면, 엄마가 싸 준 김밥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엄마표 김밥'이든 '엄마표 영어'든 결국 내가 전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방법 보다 과정에서 아이가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분위기인 것 같다. 김밥 싸는 법을 엄마가 가르쳐 준 적 없고 졸업 후 중단 된 엄마표 김밥이었음에도, 몇 십 년 후 김밥을 싸고픈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는 정취야말로 엄마가 줄 수 있는 '찐 엄마표'이진 않을까. 오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엄마표 감자전'을 하고픈 날이다. 그리고 자기 전에 아이와 더 수다스럽게 영어책을 읽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