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부터 입사까지 걸린 기간은 총 8개월
내 인생에 승무원이란 직업은 없을 줄 알았다. 사실, 이 직업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다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여러 조건을 고민해 선택했다.
28살의 가을이었던 2023년 9월, 당초 목표로 했던 만 3년 근무가 끝나고 안식월이 나오기 전까지 꽤나 마음 고생을 했다. 20대 내내 그렇게 바래온 워킹 홀리데이를 갈 것이냐 말 것이냐의 기로 앞에 섰다. 입사 때부터 크게 의지하던 사수는 이직했고, 대체로 온 팀원은 2개월도 안되어 좋지 않은 감정만 남기고 떠났다. 이와 관련된 얘기는 별도로.
'외항사는 기다림과의 싸움'이라는 말 만큼이나 오래걸렸던 채용이었다. 온라인 지원, 비디오 녹화 면접, 대면 면접(그룹 토론과 1:1 파이널)에 이어 건강 검진과 최종 입사 날짜DOJ, Date of Joining까지 8개월이 지났다.
1. 지원 : 2023년 10월 초
여하튼, 연휴를 이어 붙여 약 3주 간 발리로 떠났었다. 거기서 외항사 승무원 한 명과 짧게 이야기를 나눴고, 여러 장점을 듣다보니 '어? 이거 내가 워홀을 가서 얻고 싶은 거랑도 비슷한데?'싶었다.
찾아보니 한국인 대상으로 열린 공고가 하나 떠있었다. 국내처럼 긴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필요 없이 CV만 첨부하면 된다고 해 선베드에 누워 워홀용으로 준비해두었던 내용을 담았다. 마침 혹시 몰라 봐두었던 토익도 자격 요건 점수에 충족. 오예.
Experience 영역은 당시 다니고 있던 사무직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과 팀워크Teamwork를, 내 유일한 파트타임 경험인 SPA 브랜드 아르바이트로는 고객 응대Customer Service를 강조했다. 이 직업에 필요하지 않은 기타 인턴이나 프리랜서 들은 생략. 그 외 교환학생과 얕게나마 할 수 있는 제2외국어를 포함해 여러모로 Cultural awareness... (뭐라고 번역해야 할 지 모르겠음)적인 면도 작성했다.
그렇게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라는 마음으로 지원 완료. 외항사는 원래 기다림과의 싸움이라 하더라는 이야기만 믿고 잊고 살았다.
2. 하이어뷰(HIrevue, 비디오 녹화 면접) : 2023년 11월 초
발리에서 돌아와 다시 출퇴근 하던 중 메일을 하나 받았다. 비디오 녹화 면접인 하이어뷰에 응시하라고. 다른 지원자들보다 늦게 받은 터라 감사하게도 먼저 보고 올려주신 인터넷 후기를 참고로 준비했다. 기억이 조금 흐릿해졌지만, 롤 플레잉과 한국어 지문 읽기 그리고 영문 방송 번역을 했던 것 같다.
워낙 그루밍에 관대한 회사라고도 하고, 면접에 큰 돈을 쓰고 싶지 않아 머리는 하나로 질끈 묶고 화장도 셀프로 했다. 면접복도 그냥 집에 있는 블라우스로. 그렇게 또 다시 기다림 시작.
3. 대면 면접 초대(Invitation) : 2023년 12월 초
비디오 녹화 면접을 제출하고 나서 11월 중순에 일부 지원자들에게 대면 면접 초대장이 도착했으나, 나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면접도 나 없이(?) 그렇게 진행. 처음엔 영상 면접을 못봤겠거니, 이 길은 아니겠거니 싶어 잊고 살았다.
그러던 와중 날라온 대면 면접 초대장. 바로 2주 뒤라 처음엔 갈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준비된 것도 없고, 아직 붙지도 않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래도 어차피 워홀 가면 봐야할 영어 면접 미리 해보면 좋지 싶어 가장 빠른 날짜로 선택했다.
4. 대면 면접 - 그룹 토론 (Group Discussion) : 2023년 12월 중순
그 사이 기출 문제를 모아 답변을 준비했다. 후기를 보니 전문 경력보다는 이력서를 기반으로 그간 해온 일들을 묻는다 했다. 다른 것보다 답변 준비가 고민된 건 ‘지금 하던 일을 그만두고 왜 캐빈 크루를 하려는 지’였다.
20개 내외의 예상 질문에 대략적으로 답할 소재만 정리하고, 영어 답변은 가서 프리스타일로 해야지(?) 라는 마음이었다. 전날까지도 야근했던 터라 집가는 택시에서 면접 답변을 읽는 데 가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면 면접 당일, 머리도 화장도 셀프로 했다. 면접복이라고 할만한 게 없어 그 전주 주말에 서울시의 무료 면접 복장까지 대여했다. 그 치마에 단정한 쪽머리를 하고 있으니 출근길 공작새가 따로 없었다. 날씨가 아주 추워 롱패딩을 걸치고 핫팩 두개를 챙겨 나섰다. 가족은 물론 가장 친한 친구와 남자친구까지, 모두에게 비밀로 했던 터라 당일 사진 남긴 것이 거의 없다.
도착해 요청한 10개 내외의 서류를 제출하고, 암리치를 쟀다. 팔이 짧지 않은 163cm라 무난하게 통과. 15명 내외가 한 조가 되어 면접관이 즉석에서 내는 주제를 토론하고, 요약한 뒤 결론 짓는 일종의 그룹 토론이었다.
'내일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그 전까지 한국에서 뭘 하면 좋을까?'가 주제였다. 너무 나대지 않는 선에서 내 의견을 피력하기(최소 3마디 정도는 할 것). 다른 지원자들의 말을 경청하기.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모든 순간에 은은한 미소 보이기. 이 3가지를 염두하고 들어갔다.
번호가 불리면 탈락, 불리지 않으면 합격이었다. 그룹 토론 면접은 그 분위기에 따라 모두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도, 대부분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돌아가며 한 명씩은 말할 기회를 얻고 분위기도 좋아서 그랬는지 모두 합격.
파이널 인터뷰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