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돈도 빽도 없는데 어떻게 간 걸까?
안녕하세요, 은하수입니다.
오랜만에 돌아와 근황을 전해드리기 전 이전 시리즈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되돌아보니 하늘길 막차로 가슴을 쓸어내렸죠..)
당시 본과 3학년을 마치고 의과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2달간 뉴욕 콜롬비아 대학병원과 마운트 시나이 병원 (281번가)에서
해외실습을 다녀오며 배우고 느꼈던 내용을
브런치에 게재했습니다.
https://brunch.co.kr/@aroundthegalaxy/13
https://brunch.co.kr/@aroundthegalaxy/14
https://brunch.co.kr/@aroundthegalaxy/15
펀딩부터, 뉴욕 대학병원 컨택까지 여러 고난이 있었고,
저만 알기 아까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준비과정과 후기를 자세하게 적었어요.
(본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아이비리그 대학병원도 있었지만 한 달 교육비를 알고, 빠르게 단념하며
사서 고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외 중에서도 미국,
당시 운전을 못하는 뚜벅이였고,
한 번도 해외에 나가서 산 경험이 없었기에,
대학병원이 몰려 있어 어디선가는 저를 받아줄 거라는 생각과 더불어
사심 한 스푼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펀딩부터 스스로 마련해야 했기에 지도하는 교수님 승인 하 실습이 허가되는 Observership(대부분 무료)로 알아보았습니다.
미국은 네트워크 사회라 보통 아는 사람 소개로 Observership을 가는 거 같았어요.
저는 미국에 아는 사람이 1명도 없는데
하물며 유수의 뉴욕 대학병원 의사를 알리가 있겠습니까 ㅎㅎ
NYU, Columbia, Mount Sinai 등을 포함해
나중에는 Yale, Cleveland Clinic, MD Anderson까지
어디선가 들어본 병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매 주말마다 땀 흘리며 영어 이메일 1편씩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 미국에서
저를 받아줄 사람은
한국계 미국인이 확률적으로 높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분께 맞는 맞춤 이메일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보내었답니다.
(ex. 저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해왔으며,
이 전공에 대한 관심이 언제 생겼고, 그 관심사를 이렇게 이어왔다.
교수님께서 하시는 세부 분야 및 연구에 대해 정말 흥미롭게 느꼈다.
교수님의 이런이런 점을 배우고 싶다. 저는 이런 부분에 대한 열정이 있고,
앞으로 이런 일을 미국에서 하고 싶어서
이번에 나를 받아주면 정말 큰 기폭제가 되고,
장래에 이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라고 감히 기대해 본다.)
흔쾌히 좋은 기회를 주신 안과 교수님 한 분,
3달 후 loss 된 이메일을 비서가 살려내서 연결된 한 분 (심폐소생급..)
마지막에는 30년 전
NYU에서 박사과정을 밟으신 지도교수님의
이메일 한통으로 연결된 한 분
이후 11월 말에 미국 내 1,2위에 해당하는
Cleveland Clinic Cardiology Observership도 선발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그때는 이미 스케줄이 마무리되어 아쉽게 거절하였어요.
(Cleveland Clinic Faculty 출신의 본교 교수님께 추천서를 받은 게 강력했어요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최고..)
이후에는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가 껴있는 와중에
난리법석의 뉴욕에서 집 구하기 과정을 신명 나게 겪었습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장문의 장문 편지를 보내며 장기 렌트 할인을 보내질 않나,
(수요 과잉으로 필요 없음)
한인 민박에 알바를 하는 대신 할인을 주장하지 않나,
(노동력을 갈아 넣겠다지만 알바로 막 쓰기에 부담스러움)
뉴욕 미주 동창회에 대뜸 이메일을 보내 정중하게 방을 빌려달라지 않나,
(이런 부담스러운 요청이 얼마나 많이 갈지 고려해보지 않음)
제안 이메일이 흘러 흘러
본교 의과대학 동창회까지 전달이 되었던 이유는
제가 봐도 뜬금없는 요청이었기에
당시 저를 소개하는 동영상까지 만들었던 절박함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가상한 노력을 인상 깊게 보신
의대 동창회장 선배님이 뉴욕에 있는 동문을 수소문해
직접 연결해 주시고, 다른 동문의 따님이 혼자 지낼 공간을 알아봐 주셨답니다.
그렇게 뉴저지에 있는 Union City에서
아주 포근한 2달을 보냈습니다.
(이 집의 장점 6가지)
1) 타임스퀘어 맨해튼 44번가까지 버스 한 번에 가서 뉴욕이 20-30분으로 정말 가까움
→ 매일 출퇴근을 타임스퀘어로 다님.
→ 환승역이라 교통이 편함
2) (자가 주택) 한국인 집주인 방을 씀
→ 집 사용설명서, 교통, 주변 가이드 안내를 PDF 파일로 정리하여 보내줌
→ 대형 TV, 거실, 냉장고, 부엌, 세탁기, 건조기, 에어프라이어, 정수기, 쿠쿠 압력밥솥 있음
(뉴욕에 건조기까지 딸려 있는 집은 구하기 힘듭니다 ㅠㅠ)
3) 룸메이트 한 분 있어서 더 안락한 느낌
(정말 조용하고 터치 안 하는 분으로
가끔 마주칠 때 한두 마디 섞는 게 다지만
힘이 많이 되며 편안하게 지냄)
4) 3분 거리 중학교 1개, 초등학교 1개 학군지
→ 매일 아침, 3미터도 안 되는 휑한 교차로에서 저를 호위해 주는 형광색 아주머니와 인사함
(차가 안 다니는데도 격렬하게 흔들어주시는.. Muchas Gracias)
5) 대형 마트 도보 7분
(무료 픽업서비스 한번 이용해 봤는데 너무 짧아서 약간 부끄러울 정도)
6) 실화인가.. 1달에 80만 원도 안 되는 렌트비..
(어디냐고요..? 이제 더 이상 없는 방인 걸로 알고 있어요ㅠ)
불안하고, 하나하나 되는 게 없어
숙소비의 압박으로 실습 자체를 포기해야 할까 봐 걱정하는 와중에도
라고 생각하고 이미 이룬 모습을 상상하며
나아가며 이룬 결과라서 뉴욕행 비행기에 올라갈 때는 코끝이 찡했어요.
뉴욕에 도착하는 날, 마중 나와주신 (약 37년 윗기수) 선배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 있습니다.
지원 가능한 장학금은 다 알아보고 문의하며
본교에 있던 프로젝트 펀딩으로 대부분 해결을 하였습니다.
2년 연속으로 낙방한 멘토 멘티 장학회는 아직도 속이 쓰립니다..ㅎ
2년 내내 본과 시험기간이랑 겹치는 와중에
꾸역꾸역 영어로 에세이 쓰고, 설명회랑 면접 참여하느라 수면 문제가 생길 뻔했거든요..
(밤중에 지나가던 교수님이 풀린 동공을 보고 잡아 세우며 걱정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마감 하루 전에 날밤 새서 10페이지 프로젝트 제안서 작성하느라
회진 때 일어서서 졸고 있어 교수님께 혼나고,
반나절 만에 지도교수님께 추천서를 받아
오후 5시 마감 5분 전에 제출했던 만행도.. 다시금 기억나네요.
아시아의 디지털 헬스케어가 궁금한 거 있죠?
본과 2학년 여름방학에
본교 다른 프로젝트에 지원을 받아 3주간 중화권으로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처음 해보는 명분 제시, 예산안 짜기, 프로젝트 계획, 영수증 증빙 제출, 인터뷰 요청 등과 더불어
지원 동기, 활동 계획, 효과 등 10페이지의 설득의 글을 2달을 끙끙 고민하며 작성하느라
탐방 다녀오며 대상포진에도 걸렸거든요?
뉴욕에서는 매일 겨울왕국 Ost인 Into the Unknown을 들으며
떨리는 마음으로 출근했어요.
(국내파여도 영어에 콤플렉스가 없던 저였지만)
처음에는 들리는 영어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당최 들리지가 않으니
농담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녔고요
그러면서 포스트잇에 들리는 소리대로 일단 묵묵히 적어 집에 돌아가
찬찬히 찾아보며 단어 수로만 1만 개가 넘는 사전을 만들고,
아직 교과과정상 배우지 않은.. 세부 전공과목에 대해 공부했어요.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공부하면 정말 재밌다는 걸 공부 인생 13년 만에 처음 깨달았습니다.
자세한 건 브런치 후기에..)
본다고 이해가 되질 않으니 영어 논문은 눈씨름 하듯이 노려보며
고구마 연속으로 먹은 답답한 마음으로 지냈어요.
(아무리 룸메이트가
" 다들 네가 한국에서 살다 온 걸 알아. 영어 못하는 게 당연해.
못 들었다고 다시 얘기해 달라고 하면 돼."
라고 북돋아줘도 하나도 안 들리는데 우째..)
당시 뉴욕에는 로터리로 당일 팔리지 않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30달러 이하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주말마다 저렴한 가격으로 뮤지컬을 보러 다녔는데
(약속 없는 외국인으로서 주말마다 로터리에 계속 지원하니 안 뽑힐 수가 없더라고요)
1달이 지나고 어느 순간 농담에 저도 다른 관객들처럼 빵 터졌어요.
그때
싶어 코가 찡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장장 3시간이 넘는 회진시간도 잘 버티고, 환자들 대화, 농담에도 참여하니
이를 대견하게 여겼는지
하버드 안과, 영상의학과 수련이 예정된 있던 인턴 선생님들께서
고민 상담 및 USMLE 공부법 속성 과외까지 알려주기에 이릅니다.
궁금하던 차에 한국에서 의대를 나오고 미국에서 의사를 하는 선생님들을
뉴욕에 간 김에 인터뷰하여 10분의 인터뷰를 신문 칼럼에 게재하는 성과도 있었답니다.
구구절절 정중히
이메일을 열심히 보내면 누군가는 좋게 보고 답장을 주시고,
그분이 또 소개를 해주시더라고요.
https://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4784
돌아오면서 직후 코로나 확산세가 가속화되었고,
저는 1년의 Gap year를 가지며 많은 고민 끝에 한국에서 수련을 이어나가기로 결정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