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땐 빌리 아일리시

by 아르페지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뮤지션이 되는 것을 꿈꿨고 이제는 음악에서 위로를 받으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 새로운 음악보다는 이전에 들었던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인데 가끔 새로운 아티스트에 빠지기도 한다. 늦은 나이에 좋아하게 된 아티스트 몇 명이 있는데 그중에서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은 한번 들은 후 푹 빠져버렸다.


그녀를 처음 본 곳은 업무로 참석했던 콘퍼런스에서였다. 그녀는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일본 아티스트와 협업을 했고 이 협업에 대해 강연을 하러 연사로 참석하였다. 강연 내용을 들으며 나이답지 않게 깊고 넓은 시각을 가진 그녀가 궁금해졌고 강연 내내 배경음악으로 틀어주던 그녀의 음악을 듣고 그녀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다.

콘퍼런스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그녀의 음악을 듣고 또 들어보았다.

그저 틴에이지 스타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음악은 놀라웠다. 어떻게 어린 나이에 이런 감성의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 그녀의 천재성이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녀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짙은 우울과 고독이 안타깝기도 했다. 이렇게 멋진 음악을 만들기 위해 그녀가 감내해야 하는 우울과 고통이 내게도 그대로 느껴졌다.


2017년에 처음으로 빌리 아일리시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된 이후로 그녀의 음악을 즐겨 듣고 있는데 요즘 갑자기 bad boy라는 노래에 꽂혀서 무한반복을 하고 있다.


나는 한 노래에 꽂히면 그 노래만을 수백 번 반복해서 듣는다. 남편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데 나는 좋아하는 노래는 수십 번, 수백 번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출퇴근을 할 때도 한 시간 동안 좋아하는 곡 한곡을 무한 반복해서 듣곤 했다. 다들 이런 나를 특이하다고 했고 사실 나도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나의 이런 점을 닮은 것을 보고 세상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의 음악은 펑키하면서도 우울하고 몽환적이며 아름답다.

그녀의 음악에는 아주 짙은 우울이 깔려있는데 나는 어린 나이의 그녀가 왜 이렇게 깊은 우울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신이 천재에게 내리는 형벌 같은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우울을 달래기 위해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을 듣는다. 우울할 때는 밟고 경쾌한 음악은 듣기 싫고 우울한 음악이 끌린다. 아마도 다른 이의 우울이 나를 위로해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짙은 우울이 깔려있는 그녀의 음악이 그 정도의 우울은 괜찮다며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2017년 콘퍼런스에서 그녀를 보고 INSPIRATION을 받았다. (inspiration이라는 단어는 한글로 영감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번역을 했을 때는 잘 와닿지 않아서 영어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이런 자극들이 자꾸만 움츠려 들려하는 나를 깨워주었다. 회사 생활의 연장 선상에서 이런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inspiration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퇴사하고 나서 돌아보니 좋았던 기억들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조직 내에서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진 못했지만 inspiration을 주는 멋진 고객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래서 그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

오늘은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을 들으며 LA에서 열렸던 콘퍼런스를 회상해 본다.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쉽지 않은데 가끔 출장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