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4명의 컴퓨터 공학도가 있다.
나와 내 동생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는데 심지어 같은 대학교를 나왔다. 중고등학교까지 자매가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은 흔하지만 대학교와 게다가 학과까지 같은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대학까지 언니를 따라온 걸 보면 동생 눈에는 언니가 하는 것이 다 좋아 보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 자매 둘 다 컴퓨터 공학도와 결혼해서 나의 남편, 그리고 제부도 컴퓨터 공학도이다.
우리 넷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우리 남편은 얼마 전 직장 생활 30년을 넘겼다. 그리고 나와 내 동생, 제부도 20년 이상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전공은 같지만 우리 넷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비슷한 시대에 같은 전공을 한 4명의 커리어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워서 오늘은 우리 집안 컴퓨터 공학도 4명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연구소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개발자로 5년 정도 일하고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다른 외국계 회사로 이직해서 계속 프리세일즈로 일하다가 영업직으로 전환하였다. 대한민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나이가 마흔 쯤 되면 영업 혹은 관리직으로 전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남편은 운 좋게 사내에서 전환을 한 케이스이다. 영업으로 바꾼 이후에는 3,4년에 한 번씩 이직하면서 회사 생활을 잘 이어나가고 있다.
나는 졸업 후 대기업 연구소에 취직했다. 연구소에서 3년 동안 개발자로 일하다가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해서 프리세일즈로 일하고 있다. 이십여 년 동안 프리세일즈라는 직업에 만족하며 살았지만 요즘은 고민이 많아졌다. 대기업에 남아 있는 내 동기들은 모두 임원이 되거나 팀장이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IC(Individual Contributor)이기 때문이다. 24년이 넘는 경력에 여전히 IC로 일하고 있는 것은 내 선택이 아니었기에 길게 보면 대기업 연구소에 남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는 후회를 한다.
그리고 내 동생은 대기업에 개발자로 취업을 했다. 입사 5년 차쯤 다른 회사로 옮겼다가 다시 첫 직장으로 돌아가서 여전히 개발자로 살고 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는 내 동생의 모습은 좀 안쓰럽다. 주말에도 걸핏하면 출근을 하고 휴일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코드를 수정하곤 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조카들은 밤늦게 퇴근하는 엄마를 애타게 기다린다. 초등학교 4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어찌 보면 다 컸지만 여전히 엄마가 필요한 나이이다. 그러나 개발자 엄마는 깜깜함 밤이 되어야 겨우 집에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제부는 우리 넷 중에 가장 가방 끈이 길다. 제부는 컴퓨터 공학과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대기업에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제부도 한번 회사를 옮겼다가 다시 첫 직장으로 돌아가서 현재까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부부는 닮는 다더니 둘 다 다른 회사에 갔다가 첫 회사로 돌아간 걸 보면 첫 직장이 잘 맞았나 보다. 제부 회사도 대기업이지만 동생의 회사보다는 출퇴근이 유연하다. 그래서 평일 저녁에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거나 저녁 식사를 챙기는 것은 항상 제부 몫이다.
제부, 나의 남편, 그리고 나는 코로나가 급속히 퍼졌을 당시 모두 재택근무를 했다. 그런데 내 동생은 아직까지 한 번도 재택근무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인데도 건물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으면 재택근무를 시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웬만한 기업은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고 아이들도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는데 매일 회사에 가서 배달 앱으로 아이들 밥을 시켜준다는 내 동생의 이야기가 짠하고 안쓰러웠다.
물론 재택근무가 주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동생의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가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질병이 세상에 퍼져서 사망자가 속출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 회사에 대해 화가 난다. 괜스레 이것이 이십 년이 지났어도 나아지지 않은 개발자에 대한 처우인 것 같아서 속상하다.
동생 부부와 아직까지 서로의 직장에 대한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해 본 적은 없지만 우리 넷 모두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후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런 내용을 글로 남겨두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중에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그런 이야기들도 남기려 한다.
개발자, 연구원, 프리세일즈, 영업... 어떤 길이 맞는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농담처럼 잘리지 않고 제일 오래 다니는 사람이 승자라고 말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보다 젊은 나이에 실직한 사람들도 많으니 맞는 것 같다.
요즘 다시 컴퓨터 공학이 대세라고 한다. 우리가 대학을 다녔던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도 컴퓨터 공학은 최고 인기 학과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같은 학교 약대를 충분히 갈 수 있었는데도 컴퓨터 공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후회를 했다. 겨우 몇 년 후에 컴퓨터 공학 열풍이 사그라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비인기 학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발자는 3D 직종으로 인식되었고 나조차 야근과 주 7일 근무에 시달리다가 개발자를 그만두었으니. 부모님 말씀을 따라 약대를 갈 걸 그랬다고 후회를 하면서 살았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컴공이 호황을 누리던 때에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던 사람들은 이십 년 혹은 삼십 년이 지난 후 개발자, 연구원, 세일즈, 혹은 프리세일즈로 살고 있다. 요즘 컴퓨터 공학을 선택한 아이들은 십 년 후, 이십 년 후, 그리고 삼십 년 후에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 궁금해진다.
컴퓨터 공학이 대세라 그런지 전자공학과를 간 우리 아들도 틈틈이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고 있다. 그 덕분에 요즘 우리 집엔 늘 웃음꽃이 핀다. 아들이 짠 코드를 보면서 같이 공부도 하고 디버깅도 하면서 그때 그 시절 추억을 소환하니 이야깃거리가 끊기질 않는다.
<2021/12월>
2021년 12월 우리 넷 중 내가 제일 먼저 은퇴를 했다. 경력 25년을 채우고 자의로 퇴사한 것이니 영업, 개발자, 프리세일즈 중에서 프리세일즈가 가장 수명이 짧다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 강도는 상당히 높았다.
프로그래밍을 할 생각이 있다면 다시 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개발에서 손을 놓은 지 꽤 오래되었지만 프로그래밍은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나는 C 언어 개발자인데 C 언어 개발 쪽 일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들었다. 당장 다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일자리 제의를 거절하였지만 참고가 될 것 같아서 기록해 놓는다.
어른들이 기술을 배워야 늙어서도 먹고 산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맞는 것 같다.
<2023/3월>
은퇴를 하고 1년 정도 쉬다가 모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AI 열풍 때문에 컴퓨터 공학 수업에 학생이 몰려서 급하게 강사를 채용했다고 한다. 30여 년 전 분위기에 휘말려서 컴퓨터 공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했는데 유행이 돌고 돌아 오십이 된 나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주다니 감회가 새롭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 남편도, 내 동생도 그리고 제부도 나를 부러워한다. 아마도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나이 오십이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고 한다.
모든 것이 불안정해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나이에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