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직장상사를 겪어 보았다. 좋은 분들도 있었지만 정말 말도 안 되게 이상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어제 직장상사와 미팅을 하고 난 후에 좋은 상사(매니저)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금 현재 나의 직장상사는 철저한 관리형 매니저이다. 그는 매일 오전 9시에 전체 미팅을 소집해서 30명이 넘는 부서원들이 매일 무엇을 하는지 체크한다. 그것으로는 모자라서 팀별로 주간 미팅까지 해서 같은 내용(이번 주에 무슨 일을 했는지)을 보고하라고 한다. 기억력이 나빠서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것인지, 직원들이 다 놀고 있는 것 같아서 체크하고 싶은 것인지, 심심해서 미팅이라도 계속하고 싶은 것인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일주일에 6시간이나 되는 매니저와의 미팅 시간을 줄이면 일할 시간이 훨씬 늘어날 것 같다.
개다가 나는 하는 일을 멋지게 포장해서 남에게 떠벌리는 것에 취약한 사람이라 매일매일 하는 업무 브리핑이 부담된다. 다른 사람들은 어제 미팅에서 보고한 내용을 다음 날에는 마치 다른 일인 것처럼 포장해서 이야기를 하던데 언변이 좋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은 할 말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게다가 30명이 넘는 부서원들이 오늘 뭘 할지 보고하는 것을 매일 들어야 하는 것 또한 고역이다.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직원들의 업무 브리핑을 매일 반복해서 듣는 것은 고통스럽다.
프리세일즈 업무는 제안서를 쓰고 자료를 만들고 고객 세션을 준비하고 등의 지속적인 일이라 매일매일 다른 일을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Daily Report Meeting에서 내가 어제와 동일한 업무를 한다고 보고하면 상사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예전에는 이런 지적을 받으면 자존심이 상해서 발끈해서 맞받아쳤다. 그러나 퇴사를 결심한 후에는 이전처럼 되받아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직장상사가 새로 온 후 몇 달 동안 프리세일즈 업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자료까지 만들어 주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내 상사가 된 이후 나는 귀와 입을 닫았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꾹 참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귀를 닫아 버린다. 이 사람이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하였는데 평판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 사람 밑에서 일해 본 지인은 내가 불쌍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회사는 굳이 이상한 사람만 골라서 뽑는지 모르겠다.
이전 직장상사는 사람은 괜찮았다. 그런데 회사에 잘 오지 않았다. 직원들은 전혀 모르는 프로젝트를 하느라 바쁘다고 했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만 회사에 얼굴을 내밀었다. 재직하는 2년여 동안 분기별로 발급되는 직원들의 상여금 명세서를 한 번도 주지 않아서 참다못한 한 직원이 본사에 문의를 했고 그때부터 그의 실체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는 대부분의 이메일을 읽지도 않고 처리하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지사장님이 데려온 사람인데 지사장님이 퇴사하자 이 사람도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에서는 내보낸 거라고 하는데 본인은 그만두는 거라고 했다. 그러나 저러나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니 없어도 티가 나지 않았다.
일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사람은 좋았던 상사와 근무하던 시절에 팀원들은 알아서 업무를 수행했다. 팀원 모두 성실한 사람들이고 알아서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라 상사가 놀고 있어도 큰 문제는 없었다. 가끔 다른 부서와 업무 분장을 해야 하거나 누가 해야 할지 영역이 불분명한 업무가 발생할 때는 상사가 필요하긴 했지만 상사는 회사에 오지 않고 통화도 잘 안되니 우리끼리 꾸역꾸역 헤쳐 나갔다.
지금은 알아서 일을 잘하던 팀원들조차 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매일매일 다그치는 상사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일에 시간을 쓰지 못하고 쓸데없는 일일 보고서(Daily Report)를 꾸미고 작성하느라 중요한 일들은 뒷전으로 물러나 있다. 몇 개월 후 퇴직할 예정이지만 얄궂은 책임감 때문에 그만두는 날까지는 책임을 다하려는 나도 상사와 미팅을 하고 나면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질책을 하니 짜증이 나고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니 의욕이 사라져 버린다.
나는 직장상사가 직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팀워크가 좋아지고 업무 효율도 증가한다고 생각한다. 상사가 너무 편하게 보여서도 안 되지만 팀원들이 고민이 있을 때 찾아갈 수 있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상담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유대감은 형성되어야 팀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고 믿는다.
깐깐하고 어렵기만 한 직장상사는 오래가지 못한다. 친근하고 사람은 좋지만 리더십이 없는 상사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나의 상사는 깐깐하고 어렵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는 도무지 사람을 칭찬할 줄 모르고 만족할 줄 모른다. 모든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만 일삼는다. 나는 그 사람의 가족이 어떻게 저런 사람과 24시간을 같이 지낼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이제 상사와의 한 시간 미팅조차 견디기가 힘들다.
피플 매니저는 사람을 관리하는 사람이기에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슬프게도 나의 상사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 상사는 시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있는 내게 미팅을 하자고 이메일을 보냈다. 직속 직원이 상을 당했는데 조문을 오지는 못할망정 장례식장에 있는 직원에게 미팅을 하자고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이 내 상사라니 너무 슬펐다. 분기마다 하는 직원들과의 일대일 미팅이 상중인 직원에게 요청해야 할 정도로 시급한 것이었을까? 너무 기가 막혀서 조문 왔던 회사 동료들에게 이메일을 보여줬더니 그들은 나보다 더 기가 막혀하며 열변을 토하느라 장례식장에서 떠나지 못했다.
좋은 상사가 좋은 팀을 만들고 좋은 팀이 좋은 성과를 만든다.
지금 우리 팀은 상사의 눈에 보이는 일들만 겨우겨우 처리해나가고 있다. 알아서 일을 잘하던 젊은 직원들이 의욕을 잃고 사기가 저하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다.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에 허덕이느라 정작 해야 할 일들은 자꾸만 뒤처지고 미루어진다. 다른 팀원들이 허덕이는 게 내 눈에도 보이는데 그의 눈에는 안 보이나 보다. 문득 불평불만과 비난만 일삼는 그의 마음에 드는 직원이 한 명이라도 있는지 궁금해진다.
좋은 상사가 되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회사 일도 사람이 하는 것인지라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능률도 오르지 않고 성과도 기대할 수 없다. 구관이 명관이라더니 차라리 사람은 좋았지만 일을 하지 않았던 이전 상사가 나았다.
상사와 미팅을 하고 나면 밖에 나가서 하늘이라도 한번 보고 심호흡을 하고 와야 하던 업무를 계속할 수 있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직장생활 25년 차가 되어 보니 아버지가 왜 그렇게 담배를 태우셨는지 알 것도 같다. 이 사람 때문에 입사 20주년 기념일까지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