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세일즈 업무는 말 그대로 프리 세일을 하는 것이다. 구매를 검토하고 있는 고객에게 제품 기능을 잘 알려주고 원하는 업무에 잘 적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 구매로 넘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모든 업무를 포함한다. 이러한 프리 세일즈 요청은 대부분 세일즈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세일즈와 함께 하는 업무 비중이 높다. 따라서 같이 일하는 세일즈와의 관계가 회사 생활에서 꽤 중요하게 작용한다.
올해 나와 같이 일하게 된 세일즈는 나보다 4살 어리다. 같은 팀이 아닐 때는 누님이라고 부르면서 나를 잘 따랐다. 제품에 대한 질문도 자주 하곤 했다. 같은 팀으로 지정된 프리세일즈가 있는데 나에게 제품 문의를 하는 그가 귀찮기도 했지만 힘이 닿는 한 답변을 해줬다. 그런데 그와 같이 일하게 되면서 그의 진짜 얼굴을 알게 되었다.
그는 거의 매주 토요일 혹은 일요일 저녁에 매니저와 여러 명의 동료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낸다. 처음에는 급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4개월째 계속되는 것을 보니 일종의 쇼맨십이다. 매니저와 동료들에게 나는 주말 저녁에도 업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계속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그는 이메일을 보내고 나면 그만이지만 장문의 이메일 때문에 숙제가 생긴 사람은 프리세일즈이다. 그의 이메일을 받은 프리세일즈는 주말 저녁에 답변을 작성해야 한다. 불행히도 그의 이메일은 항상 장문이다. 적어도 서너 시간은 자료를 찾아보고 고민한 후에야 답변을 완료할 수 있는데 이런 이메일을 왜 꼭 주말 저녁에 보내는 것인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의 이메일을 읽고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에 컴퓨터를 켜고 자료를 검색하며 답변을 찾는 내 모습이 비참해서 자료도 다 찾고 답변도 작성했지만 전송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작성해 놓은 답변은 월요일 오후에 보냈다. 월요일 오전에 보내면 일요일에 몇 시간씩 일을 한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매니저가 영업들은 매출 때문에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데 프리세일즈들은 태평하다고 불평을 했다. 어이가 없었다. 매니저는 항상 세일즈 편이다. 10명의 세일즈들이 제안서, 고객 미팅 등의 지원 요청을 난발하고 있는데 팀으로 지정된 프리세일즈는 겨우 3명뿐이다. 열 명의 요청을 3명의 프리세일즈가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면서 겨우겨우 막아내고 있는데 왜 우리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까? 단지 매니저에게 하소연을 하지 않았다고 우리를 이렇게 매도하는 것인가? 프리세일즈도 영업처럼 매일 저녁 매니저 집 앞으로 찾아가서 형님형님하면서 술을 먹고 신세한탄을 해야 하나? 기가 막히고 화가 났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미 이전의 경험으로 뭐라고 변명을 해도 매니저는 프리세일즈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M사에서 온 나의 매니저는 무엇 때문인지 처음부터 모든 프리세일즈를 싫어했다. 알아서 일을 잘하고 있는 프리세일즈의 KPI를 새로 만들고 이상한 업무(예를 들면 제품별 매출 데이터 취합)를 시켰다. 부임해서 2년 동안 이런 말도 안 되는 시도를 하다 프리세일즈 팀이 반발했더니 공식적인 자리마다 프리세일즈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을 했다. 프리세일즈 매니저가 프리세일즈가 하는 일이 없다고 하니 세일즈들도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제안서 작성, 고객 미팅 및 제품 시연만 준비하기도 벅찬데 말도 안 되는 요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삶이 계속되어 프리세일즈팀 막내가 너무 힘들어하길래 당분간 우리는 매니저가 없다고 생각하고 일하자며 달랬다. 그러나 결국 그는 다른 부서로 옮기고 말았다.
프리세일즈도 매출을 달성하지 못하면 급여의 30%를 받지 못한다. 프리세일즈도 매출 달성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참고로 세일즈는 매출 달성을 못하면 급여의 40%를 받지 못한다. 단 10%의 차이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보이는 걸까? 매니저는 대체 왜 저런 편견을 가지게 된 걸까? 그리고 왜 그런 편견을 같이 일하는 세일즈들에게 심어주는 걸까? 왜 회사에서는 저런 사람을 프리세일즈 매니저로 데려온 걸까?
매니저가 온 지 2년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여러 명의 직원이 퇴사했다. 매니저는 다들 좋은 기회를 찾아서 떠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부서 네 명 중 한 명은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는 몇 달 후에 조용히 퇴사를 할 예정이다. 그러고 나면 회사에서는 어떤 조치가 이루어질까?
안타깝지만 나의 대답은 NO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내 예상이 틀렸으면 하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에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던 세일즈가 이번 주에는 토요일 밤에 이메일을 보냈다. 남편은 읽지 말라고 하는데 휴대폰에 알림이 떠 있는데 이메일을 읽지 않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읽으면 짜증이 날 것 같아서 이메일을 그대로 두었다가 하루 종일 무거운 짐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요일 저녁 결국 이메일을 열었다.
토요일 밤에 받은 이메일에 나는 답장을 해야 할까? 그의 이메일보다 갑절은 긴 답장을 해서 매니저에게 프리세일즈들도 주말에도 열심히 일을 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할까? 매주 주말마다 이메일이 오는데 그때마다 주말에 일을 해서 답장을 해야 할까? 나는 그렇다 치고 주말에도 재깍재깍 답변을 하는 나 때문에 동료들까지 피해 보는 것은 아닐까?
답장을 하지 않으면 매니저는 또 프리세일즈는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할 것이다. 어차피 나아지지도 않을 테니 그냥 지적을 받으면서 주말에는 일을 하지 말까?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요청들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지는 이메일을 보내서 한번 엿을 먹여줄까? 오만가지 생각으로 오늘도 잠을 못 이루지 못하고 있다.
퇴사가 얼마 남지 않은 때에 이런 사람과 같은 팀이 되어서 유감이다. 이 사람과 같이 일하지 않았더라면 세일즈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을 가지고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엿 같은 매니저와 엿 같은 세일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퇴사를 하게 될 것 같다.
회사 생활이란 게 참 고되고 힘들다. 내가 이런 고된 시간을 어떻게 25년이나 견뎠는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에 결국 잠을 못 이루고 새벽이 되어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새벽 배송차의 불빛이 부엌 창가를 환하게 밝혀준다. 일요일 새벽에도 새벽 배송을 한다는 것을 전에는 미처 몰랐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일요일 새벽에도 배송이 계속되어야 한다니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