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평범한 것을 싫어했다. 소싯적에는 예쁘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검은색 뿔테 안경을 고집했다. 사춘기 반항심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예쁘다는 말이 싫었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써서 차가운 인상을 더 차갑게 보이게 했다. 뿔테 안경 덕분에 남자 애들은 쉽게 내게 말을 걸지 못했다. 중학교 동창 하나가 학교 다닐 때 나를 좋아했는데 무서워서 고백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모두 피아노를 배울 때 클래식 기타를 배웠다. 기타 학원에 가면 중학생 여자 아이는 나 하나밖에 없었지만 희소한 악기를 한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기타를 메고 동네를 활보하면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럴 만도 했다. 80년대에 보수적인 동네에서 중학생 여자 아이가 기타를 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친구들이 가요를 들을 때 afkn 라디오를 들었고 빌보드 차트를 외우고 다녔다. 중학교 1학년 때 팝송을 듣기 시작했는데 바로 프로그래시브와 헤비메탈에 빠졌다. 당시 헤비메탈은 금지곡이 많아서 을지로에 가서 빽판을 사서 들어야 했다. 매우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모두 내가 특이하다고 말했다. 나 자신도 내가 평범하지는 않다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시시해 보여서 항상 나만의 취향을 찾아다녔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이런 취향을 유지하며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살았다. 대학교 시절 그 흔한 미팅, 소개팅도 하지 않았고 연예도 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왠지 나답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가 남편을 만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특별함을 더 이상 지킬 수 없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음악도 듣지 못했고 일과 육아에 치여 클래식 기타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나는 마흔이 훌쩍 넘어 있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니 나만의 시간이 생겼고 차분히 음악을 즐길 여유도 생겼다. 출퇴근을 할 때 차 안에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의 플레이 리스트를 살펴보니 김동률의 곡들이 있었다. 발라드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김동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음악이 궁금해서 듣는 것이라고 자신을 속였다. 그러나 단지 궁금해서 듣는다기엔 그의 곡들이 너무 많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다가 김동률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 꼭 프로그레시브와 메탈만 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그저 좋은 음악이면 되는 것을 그동안 내가 이상한 강박 관념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인정하고 나니 후련했다. 그 후로 김동률의 음악을 맘껏 듣기 시작했다. 편견을 버리고 나니 다양한 음악들이 귀에 들어왔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가요를 듣기 시작한 사람, 그게 바로 나다.
김동률의 곡 중에 다음 곡들을 좋아한다.
- 잔향
- 오래된 노래
- 여름의 끝자락
- 이방인
- Train
- 어쩐지
- Advise
- 새
- 고독한 항해
- J's Bar
- 떠나보내다
- 농담
김동률 덕분에 카니발을 알게 되었고 이적이라는 뮤지션도 알게 되었다. 김동률 덕분에 베란다 프로젝트를 접하게 되었고 이상순이라는 기타리스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kimdongryul.com에서 그의 글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사이트가 사라져 버려서 아쉽지만 김동률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일상, 그리고 음악에 대한 생각을 글로 남기고 공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음악처럼 그의 글도 참 좋았다.
음악은 그냥 음악일 뿐인데 나는 이상한 경계선을 긋고 음악을 가려서 들었던 것 같다. 나의 편견을 깨뜨려 준 김동률의 음악에 감사하면서 오늘도 그의 음악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