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타를 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물론 회사를 다닐 때 받던 스트레스와는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이지만 그래도 스트레스는 스트레스이다.
기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완주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쉬었다 다시 시작했다를 반복하긴 했지만 기타와 함께 한 세월이 꽤 되니 한 곡이라도 멋지게 연주해서 영상으로 남겨놓고 싶은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연습을 꽤 한 것 같은데도 녹화해서 들어보면 세심한 부분까지 들려서 지우고 다시 녹화하기를 수십 번 반복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처음엔 별로 어렵지 않게 보이던 파트도 연습을 하다 보면 까다롭게 느껴진다.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한 두 마디가 매끄럽지 않아서 녹화를 하고 지우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여러 번의 시도 후에 이번엔 잘 연주한 것 같아서 녹화 영상을 들어보면 어디선가 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튀어나온다. 어느 소절에서 소리가 작은 것이 거슬리거나 연주할 때는 들리지 않던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들리거나 어이없게도 박자가 틀리기도 한다. 결국 오늘도 만족스러운 영상을 남기지 못하고 두 시간 넘게 녹화한 영상을 모두 지우고 말았다.
대체 완벽한 연주는 어떻게야 할 수 있는 것인지, 온라인 기타 선생님들의 매끄러운 연주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이상하게도 직접 연주를 할 때 한 두 번 틀리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영상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아마도 직업병인 것 같다. 프리세일즈를 하면서 강연을 많이 했는데 나의 강연 녹화 영상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보곤 했다. 어쩌다 나의 과거 영상을 보면 실수가 눈에 밟혀서 녹화를 할 때는 수십 번 연습을 하고 녹화장에 들어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놈의 직업병 때문에 기타 연주를 녹화하는 데에도 적당히가 통하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연주가 나올 때까지 녹음을 하고 또 녹음하지만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35년 내내 기타를 쉬었다 다시 시작했다를 반복하긴 했지만 그래도 꽤 오랜 세월 동안 기타를 쳤는데 한곡도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다니 내가 바보처럼 느껴져서 우중충한 날씨처럼 축 쳐져 있었다.
침대에 축 늘어져서 유튜브를 뒤적이다가 좋은 영상을 하나 발견했다. 나의 온라인 기타 선생님이 완주에 대해 설명하는 강의였는데 그 영상을 본 후 마음을 다잡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은 너무 완벽한 연주였다. 완주의 의미를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는 있지만 전문가도 아닌 내가 완벽하게 연주하려고 했던 것은 무리였음을 깨달았다.
영상을 본 후 완주의 의미를 재정의했다. 악보를 보지 않고 끝까지 연주할 수 있고 한 두 마디 정도 틀려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면 내게 있어서 완주로 정의하기로 했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피아노와 기타를 꽤 오래 배웠는데 유독 기타는 완주가 어렵다. 기타라는 악기가 섬세해서 조금만 틀려도 바로 티가 나고 컨트롤이 어렵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실수를 고치려고 기타 동호회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기타 초보자 커뮤니티이니 분명 기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일 텐데 그들은 벌써 A 곡을 끝냈고 B 곡을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완주해 보겠다고 몇 개월 넘게 한 곡만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데 겨우 몇 개월 기타를 배운 사람들이 같은 곡을 끝내고 다른 곡을 도전하고 있다니 어리둥절했다. 쉬었다 다시 시작했다를 반복했지만 기타와 함께 한 시간이 어언 5년이 넘는데 나의 노력과 시간이 무색해졌다. 완주이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이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많이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똑같은 일을 시켰는데도 어떤 사람은 일주일 넘게 끙끙거리면서 겨우 끝냈고 어떤 사람은 반나절 만에 다 끝내곤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주일 넘게 끙끙 댄 사람의 결과가 더 좋은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원하는 결과는 완벽한 아웃풋이 아니다. 회사 업무는 시간이 생명이기 때문에 적절한 시간 내에 80%의 정도의 아웃풋을 뽑아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현실을 깨닫게 된 후 나 같은 완벽주의자는 회사원보다는 공부를 계속하는 편이 나았을 거란 후회도 했다.
세상의 많은 단어가 사람들마다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을, 즐기려고 시작한 취미 때문에 너무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기타를 연습하면서 배운다.
인생에 있어서 완주도 사람들마다 각기 다르게 해석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대충 한번 훑어보고 나서 완주를 했다 말할 것이고 나 같은 사람은 백번 넘게 연습을 하고도 아직 부족하다고 말할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각자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니까. 그래도 이제 한 살 더 먹었으니 이놈의 완벽주의를 조금은 내려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