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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Sep 20. 2020

엄마와 딸

엄마와 딸은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때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서로 사랑하지만 때론 서로 미워하기도 하는 아주 복잡한 관계인 것 같다.


나는 결혼하면서 엄마로부터 독립했지만 엄마가 손주를 키워주시면서 다시 엄마와 같이 살게 되었다. 엄마와 같이 사는 것은 때론 좋고 때론 참 힘들다. 나도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도 나를 사랑하지만 우리 둘은 취향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엄마는 음식을 하시면 집에서 가장 큰 솥이나 냄비부터 꺼내신다. 김치찌개도 한 솥을 끓여서 냉장고에 넣어 두신다. 십 인분이 넘는 김치찌개는 냉장고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가 동생 가족이 놀러 오거나 갑자기 손님이 올 때 사용된다. 엄마는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김치찌개와 각종 음식으로 순식간에 한 상을 차려 내신다. 나는 그 음식을 같이 먹지만 김치찌개와 반찬들이 몇 달 동안 냉장고에 있었던 것인지 알고 있기에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손주가 군대에 간 이후 엄마, 나, 그리고 우리 남편 이렇게 세 식구가 같이 살고 있지만 요즘도 엄마는 김치찌개를 하면 10인분 정도는 해서 냉장고에 넣어 두신다. 나와 남편은 찌개를 먹지 않는데 저 김치찌개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남편은 고혈압 때문에 찌개류의 음식을 피하고 있고 나는 원래부터 국물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손주가 갑자기 휴가를 나올 수 있으니 미리 음식을 해 놓으시는 것 같은데 코로나 때문에 군대에서 휴가를 내보내주지 않으니 엄마의 김치찌개는 냉장고 안에서 상해 간다. 냉장고 안의 김치찌개가 열흘 정도 되면 남편은 엄마의 찌개를 버려도 되는지 묻는다. 나도 열흘이 넘은 찌께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깔끔한 남편과 손이 큰 엄마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낸다. 음식을 하신 엄마의 정성을 생각하면 버릴 수가 없고 아무리 냉장고에 있다지만 이젠 먹기 찝찝한 음식을 그냥 두기엔 깔끔한 남편의 눈치가 보여 쩔쩔매면서 며칠을 더 보내다가 결국 찌개에 곰팡이가 핀 후에 겨우 버린다.


엄마는 모든 일회용 플라스틱 통을 모아 놓으신다. 요즘은 일회용 통도 너무 잘 나온다면서 버리지 말라고 야단을 치신다. 배달 음식에 딸려 온 일회용 플라스틱 통, 반찬 통, 심지어 음료수 병까지 모아 놓아서 어지러운 부엌을 보면서 대체 엄마가 그 통을 어디에 쓰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언젠가 필요하시다며 쌓아 놓는데 안 그래도 좁은 다용도실에 온갖 플라스틱 통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확 짜증이 난다. 참다 참다 차곡차곡 정리해서 안 보이는 곳에 넣어 두었더니 친구분에게 플라스틱 통을 잔뜩 받아와서 다시 쌓아 놓으셨다. 저런 일회용 플라스틱 통은 두 번, 세 번씩 재활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 대체 왜 모아 놓는 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아주 넓은 집을 사서 엄마와 나의 공간이 분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는 옷과 신발을 버리지 못하신다. 십 년 넘게 살던 집을 수리하면서 서재 방에 붙박이 장을 만들어 드리고 엄마 옷을 수납하시라고 내어 드렸다. 물론 엄마 방에도 붙박이 장이 두 칸이나 있다. 엄마 옷과 신발은 엄마 방의 붙박이 장과 서재 방의 여섯 칸의 붙박이 장을 다 채우고도 넘쳐서 베란다 수납장에도 차곡차곡 쌓여있다. 베란다 수납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꺼내려면 엄마의 박스를 몇 개씩 옮겨야 해서 수납장을 쓰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어느 날 우리 부부가 외출한 사이에 엄마 혼자 베란다 수납장에서 무언가를 꺼내시려고 하시다가 넘어지셨다. 집 앞에 슈퍼에 갔다 오다가 넘어져 있는 엄마를 보고 기겁을 했다. 우리 아들이 고3 때도 높은 서랍에 있는 짐을 꺼내시려다가 고관절이 부러진 적이 있다. 엄마 간병을 하느라 병원에서 쪽잠을 자면서 직장 다니며 고 3 아이 건사하는 것만도 힘겨운데 엄마까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속상해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던 기억이 났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성격과 취향이 다른 엄마와 내가 자꾸만 부딪친다. 부엌살림에는 관여하지 않던 내가 부엌에 있는 것들을 버리고 치우면 엄마는 짜증을 내신다. 그러나 나는 코팅이 전부 벗겨진 프라이팬에서 만든 음식을 먹고 싶지 않다. 오랜 세월에 음식이 눌어붙어서 깨끗이 닦이지 않는 냄비에서 만든 음식도 싫다. 이십 대 중반이 된 우리 아들이 예전에 사용하던 유아용 그릇과 수저도 쌓아놓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의 성격 때문에 부엌 수납장이 무너져 내릴까 봐 두렵기도 하다.


며칠 전에는 김장용 대야를 버렸더니 올해는 김치를 하려고 했는데 왜 버렸냐고 버럭 하셨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김치를 하셨던 것이 오 년도 더 지났는데 대야를 버리자마자 김치를 하겠다고 하신다. 그 대야 때문에 덩치가 큰 남편은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몇 년을 참다가 겨우겨우 버렸는데 갑자기 5년 넘게 하지 않던 김장을 하시겠다니 억장이 무너졌다.


오늘도 어떤 것은 내가 참고 어떤 것은 엄마가 참으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서로 다른 세대가 한 집에 사는 것은 참 어려운 일 같다. 나는 우리 엄마가 좋은데 엄마의 취향은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와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취향을 존중하며 한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그것이 요즘 나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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