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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Jan 26. 2021

엄마와 딸 2

어제저녁에 엄마랑 말다툼을 하고 갈 곳이 없어서 집 앞 소공원을 뱅뱅 돌다가 집에 들어왔다.


말다툼의 시작은 나의 퇴사 계획이었다. 25년 동안 쉼 없이 일한 나는 퇴사를 계획하고 있다. 다 같이 저녁을 먹다가 퇴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의 퇴사를 응원하고 있는 남편은 가만히 있었는데 엄마가 그 나이에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은 축복이라며 감사한 줄 알고  다니라고 하셨다. 거기까지만 하셨더라면 그냥 참고 넘어갔을 텐데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진 네 동생을 생각하고 참고 다니라고 한 마디를  보태셨다.


25년 동안 가족을 부양했는데, 뼈 빠지게 일하면서도 정작 월급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아버지 병원비를 대고 친정 생활비를 드렸는데 왜 나한테 이런 희생을 강요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딸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얼마나 힘들길래 그러는지 먼저 물어보는 게 순서아닐까. 


나는 너무 지쳤다. 장염에 걸려 연거푸 토하면서도 휴가를 낼 수 없어 출근을 해야 했고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집에 돌아와서 쓰러진 날들이 숱하게 많았다. 108배를 하고도 분노를 삭일 수 없어서 가슴을 치면서 출근했던 날도 수없이 많았다. 그렇게 힘겹게 기억되는 25년인데 이런 나의 노고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참고 다니라고 는데 너무 화가 나서 몇 마디를 쏘아대고는 집을 나섰다.


본인은 한 번도 일을 해보신 적 없고 돈을 벌어보신 적이 없어서 직장 생활의 고달픔에 공감하시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경험하지 못한 세계이지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엄마는 항상 그랬다. 본인의 말만 옳고 남들은 다 틀렸다는 식으로 말씀하시곤 해서 엄마 말이 듣기 싫을 때가 많았다. 

항상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엄마를 닮게 될까 봐 무섭다. 어떻게 본인이 겪어보지도 않은 일들을 저렇게 쉽게 독단하실까.

나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고 몸이 부서져라 힘들게 일하다 여기저기 탈이 났는데도 직장은 계속 다녀야 한다니. 그동안 내가 짊어졌던 모든 짐들에 대해 분노가 치민다.

사진은 25년 내내 수없이 봐야 했던 동트는 새벽녘 사무실 풍경이다. 엄마의 만류에도 나는 퇴사를 할 것이고 아마도 같이 살고 있는 우리는 더 부딪치게 것 같다. 엄마가 변할리는 없으니 내가 변해야 이 난관을 해처 나갈 수 있을 텐데 아직은 답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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