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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Sep 11. 2022

엄마와 딸 3

추석 연휴에 결국 엄마 때문에 집을 나왔다. 엄마와 같이 살고 있으니 집을 나와도 갈 데가 없어서 집 근처 카페에 하염없이 앉아있다.


나는 명절이 싫고 명절 음식도 싫다. 원래 갈비나 전 같은 명절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하루 종일 기름 냄새를 맡으면서 전을 부치고 나면 명절 음식을 입에 대기도 싫어진다. 그러나 시댁 어른들 앞에서 음식을 깨작거릴  없으니 평소에는 절대 먹지 않는 기름진 것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곤 했다. 음식을 밀어 넣으면서도 물 가져와라, 김치를 더 내와라 등의 중간 시중을 드느라 음식이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른 채 허겁지겁 식사를 한다. 그렇게 음식을 구겨 넣은 후, 과일도 깎아 내고 설거지도 하고 뒷정리도 한 후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힘든 명절을 지내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들이 없고 딸만 둘인 우리 집은 큰 딸인 내가 시댁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온 후에야 명절이 시작된다. 동생은 시댁인 부산에 내려가 있으니 명절 연휴에 우리 집에 올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 집 차례를 지내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힘들까 봐 음식을 미리 다 해 놓으셨다고 하는데 엄마가 준비하는 것은 갈비와 국뿐이다. 시댁에 가져갈 전을 부칠 때 우리 집 차례에 쓸 것까지 두 배로 만들어야 하고 과일이나 송편도 시댁에 가져갈 것만 사 오면 서운하다고 한 마디 하신다. 그렇게 모든 것을 두 배로 준비해 놓고 시댁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오면 우리 차례가 시작된다.


엄마는 간소하게 지낸다고 말씀하시지만 갈비에 국에 전에 나물에 내가 보기에는 시댁의 차례상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두 번의 차례를 지내고 나면 온 가족이 모여 늦은 점심을 먹게 되는데 엄마는 사위와 손주가 자신이 한 음식을 맛있게 먹지 않는다며 서운해하신다. 그러나 우리도 사람인지라 오전에 기름진 갈비와 전을 잔뜩 먹고 왔는데 똑같은 음식이  들어갈 리가 없다. 게다가 갈비만 빼면 전은 내가 만든 거라 오전에 먹은 과 똑같은 것이니 다들 손을 대지 않는다. 사위와 손주가 갈비를 먹지 않아서 서운해하는 엄마 때문에 나 혼자 억지로 갈비를 욱여넣고는 체해서 소화제를 먹곤 했다.


이것이 우리 집의 명절 풍경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명절 스트레스가 훨씬 더 심했다. 통상적으로 명절 연휴 전에는 업무가 많이 몰린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마무리 짓고 가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며칠 야근하면서 급한 일들을 마무리 짓고 나면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는데 명절 준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퇴근하면서 빨리 장을 보고 전을 부쳐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차례나 제사를 안 지내는 집도 많던데 이런 내 처지가 서러워서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펑펑 울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누구보다도 헤아려줘야 할 엄마가 명절을 두 번씩 지내게 해서 나를 더 힘들게 한다. 엄마는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시댁에서 돌아온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오자마자 점심은 언제 먹을 것인지 물으시는데 다들 속이 좋지 않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서운함을 내비치셨다. 겨우 타협해서 오후 5시에 상을 차렸는데도 다들 갈비에 손을 대는 둥 마는 둥 음식이 그대로 남자 서운함이 폭발하셨나 보다. 이 집에서 나는 뒷전이라며 쏘아붙이시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쌓였던 서운함이 폭발해서 그대로 집에서 나왔다. 집에 있다가는 엄마와 싸울 것 같았다.


어제는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오전에는 차례를 지내느라 힘들었으니 이제 내 집에서 편히 쉬고 싶은데 내 집에서도 편히 쉴 수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누구보다도 나를 이해해줘야 하는 엄마가 되려 나를 아프게 하니 속이 상한다.


아무도 갈비를 좋아하지 않는데 명절에는  갈비를 먹어야 할까? 엄마는 왜 자신은 먹지도 않는 갈비를 명절 때마다 한가득 해서 우리를 괴롭히시는 걸까? (우리 엄마는 채식주의자이다.) 그냥 식구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건강하게 한 끼 차려 먹으면 안 되는 걸까?  

딸이 고생하고 온 것이 보이지 않을까? 엄마도 누군가의 며느리가 아니었던가? 나는 왜 내 집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엄마 눈치를 보면서 꾸역꾸역 갈비와 전을 욱여넣어야 하는 걸까? 대체 기름지고 몸에 좋지도 않은 음식들을 식구들에게 먹이려고 하시는 걸까?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들이 내 가슴을 후벼 판다.


엄마랑 싸우지 않고 명절 연휴를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같은 집에서 살고 있으니 딱히 피할 곳이 없다.

내일은 남편이랑 드라이브라도 갔다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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