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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Aug 25. 2023

30년 만에 혼자 공연을 보러 갔다

30년 만에 혼자 공연을 보러 갔다.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공연을 예매했는데 남편이 갑자기 못 가게 되어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환불도 안되는 나 혼자라도 보고 오자.'


사실 나는 공연을 혼자 보러 갈 정도로 용기가 있는 편은 아니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홍대에서 하는 공연이라 더 망설이고 있었다. 반백의 나이에 젊은이들의 거리인 홍대에 가는 것이 왠지 껄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매창만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이 같이 가주겠다고 해서 표를 샀다. 그런데 공연 당일에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남편이 못 가게 된 것이다. 당연히 당일 환불 은 안되니 표 값을 날렸다 생각하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용기가 불끈 쏟았다. 아주 오래전에 혼자 공연을 보러 갔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못할 게 뭐 있나 싶었다.



대학생 때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공연을 혼자 보러 간 적이 있다. 소심한 성격 탓에 공연을 혼자 보러 가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들이 좋아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기타리스트 공연을 같이 가자고 하기도 미안하고 빤한 주머니 사정에 몇 만 원이나 하는 표를 두 장이나 사서 친구를 데리고 가는 것도 부담이 되어서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서 혼자 공연을 보러 나섰다.


공연장 앞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표를 샀다. 혼자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처음이라 공연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극도로 긴장한 채로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공연장은 커플로 가득 차 있었고 내 자리 양 옆에도 커플 두 쌍이 앉아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자리에 앉았는데 앉자마자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빨리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며 몇 줄 안 되는 팸플릿을 읽고 또 읽었다.

 

드디어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었지만 연주가 시작된 후에도 가끔씩 나를 흘깃거리는 커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은 기타리스트가 좋아서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아니고 데이트하러 왔다가 즉흥적으로 표를 사서 온 듯했다. 그래서인지 공연보다 내게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여자 혼자 공연을 보러 온 이유가 궁금한 듯 공연 내내 그들이 소곤거리는 소리 때문에 기타 연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 후론 다시는 공연을 혼자 보러 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시선 때문에 공연을 제대로 즐길 수도 없었고 그렇게 공연을 볼 바에야 그냥 집에서 CD를 듣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의 기억을 아직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내가 30년 만에 다시 공연을 혼자 보러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나이 오십이 넘었으니 이전보다 배짱도 두둑해졌고 특히 좋아하는 기타리스트가 소극장에서 하는 공연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기타 같은 악기는 공연장의 크기에 따라서, 그리고 무대와 좌석의 거리에 따라서 소리가 달라지는데 작은 규모의 공연장에서, 연주자 바로 가까이에서 기타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공연장 가는 길은 나를 설레게 했다. 태풍이 지나간 탓인지 바람까지 살랑살랑 부는 날씨는 한여름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원했다. 약간 흐린 탓인지 햇살도 강하지 않아서 나들이하기 적당한 날씨였다. 가끔씩 혼자 나오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연장에 도착했고 얼른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행히 공연장에 불이 꺼진 상태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무대와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연주를 들으면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작은 규모의 공연장이라서 그런지, 장소가 재즈 클럽이라서 그런 건지 원곡과 다르게 편곡된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고 마지막 곡이 연주될 즈음 처음으로 혼자 온 것을 들킬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짐을 챙겨서 준비를 하고 있다가 마지막 곡이 끝나자마자 공연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내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더운 여름이 한 풀 꺾였는지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홍대 거리를 걸으면서 용기를 낸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내가 우리 아들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과 같은 공간에 앉아서 공연을 봤지만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기타리스트의 오랜 팬들도 있었고 오늘 그를 처음 본 사람들도 있는 듯했는데 모두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30년 전의 공연장에서처럼 그 어느 누구도 옆을 쳐다보거나 혼자 온 사람을 가리키며 수군거리지 않았다.


30년 만에 혼자 보러 간 공연은 너무 좋았다. 30년 전, 스무 살의 나는 혼자 공연을 보러 갔다가 같은 또래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했는데 2023년 오늘, 이십 대의 젊은이들은 오십이 넘은 나에게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힙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오늘 이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말 같다. 오늘 내 옆에서 같이 공연을 즐긴 젊은이들은 멋졌고 재즈 클럽 에반스는 힙했다.




집에 돌아와서 30년 전 일기장을 뒤적여서 공연장에 혼자 갔던 날의 일기를 찾아서 읽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당혹스러웠던 감정도 빼꼭하게 적혀있었지만 공연을 보러 가길 잘했다는 내용이 더 많았다. 사람은 뇌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나 보다. 기억의 왜곡 때문에 소중한 공연을 놓칠 뻔했다.

  

30년 전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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