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소설> 엄마의 인생 1

by 아르페지오

군자씨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들을 바랐던 아버지는 큰딸이 집을 먹여 살리고 살림밑천이 될 거라는 점쟁이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군자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성인군자처럼 어질고 너그러운 품성을 가져서 가족을 잘 보살피라는 의미였다.

군자씨 어머니는 이듬해에 아들을 낳아서 시어머님의 구박에서 벗어났다. 연년생인 군자씨 남매는 사이좋게 지냈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하던 시절이라 군자씨 부모님은 둘째인 아들에게만 양질의 교육과 좋은 옷을 제공했다. 군자씨는 사촌 언니가 입던 옷, 부모님이 동생에게 사 준 책들을 읽으면서 자랐다. 군자씨 어머니는 자녀들이 커갈수록 군자 씨가 둘째인 아들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키지 않아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반에서 일등을 밥먹듯이 하는 군자씨에 비해 아들은 공부에 영 관심이 없었다. 딸이 아들보다 잘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큰딸을 유독 예뻐했던 아버지는 딸에게도 부족함이 없는 교육을 받게 해 주었다.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고 하던 1960대에 군자씨 아버지는 군자씨를 대학에 보냈다.


군자씨는 부모님이 정해준 대로 E대 국문과에 들어갔다. 딸을 예뻐했지만 그래도 여자는 시집을 잘 가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던 군자씨 아버지에게 E 대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군자씨는 국문과를 선택했다. 여자가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던 시절이라 시집가기 전에 좋아하는 책이나 실컷 읽으려는 생각이었다. 165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에 하얀 피부, 이목구비가 뚜렷한 군자씨는 어디서나 눈에 띄었고 만장일치로 국문과 퀸으로 뽑혔다. 자동으로 E대에서 최고의 미인을 선발하는 메이퀸 대회에 나갔지만 메이퀸에는 뽑히지 못했다. 군자씨의 미모과 지성은 딱 거기까지였다.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꽤 괜찮은 미모와 지성을 지닌 군자씨는 무난하게 4년의 대학 생활을 마쳤다.


군자씨가 졸업을 하자마자 부모님은 뚜쟁이에게 연락을 했다. 군자씨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부모는 군자씨를 부잣집에 시집보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부잣집에 딸을 시집보내면 처갓집까지 먹여 살리는 경우가 많았다. 뚜쟁이에게 웃돈을 주고 부탁을 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적당한 혼처를 물어다 주었다.


신랑감의 인상은 순해 보였고 집안은 부유했다. 군자씨의 부모님은 군자 씨를 첫 번째 선을 본 집에 시집보내기로 했다. 군자씨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결혼이란 것을 했다. 1970년대에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결혼을 했기에 군자씨도 부모님의 결정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