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소설> 엄마의 인생 3

by 아르페지오

사랑도 없이 시작한 군자씨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삐끗거렸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군자씨 남편은 모든 면에서 미성숙했다. 정서가 불안해서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는데 시댁에서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결혼시킨 것이었다. 군자씨도 군자씨 부모도 할 말은 없었다. 재력만 보고 신랑감을 구했고 사람 자체는 살피지 않았으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군자씨는 어린아이 같은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 달랑 얼굴 한번 보고 결혼을 했으니 없던 애정이 생길 리도 만무했다. 부부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고 무미건조한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결혼 2년차에 딸들이 태어나자 군자씨는 바빠졌다. 지루했던 결혼 생활에서 군자씨가 관심을 쏟을 대상이 생긴 것이다. 군자씨는 딸들을 성심성의껏 길렀다. 책을 좋아했던 군자씨는 동화전집, 세계문학전집을 사서 온 집안을 책으로 채웠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지고 놀고, 책과 함께 자란 딸들은 훌륭하게 성장했다.

딸들이 커가는 동안 군자씨 부부는 더 소원해졌다. 군자씨에게는 친구 같은 딸이 둘이나 있었으니 굳이 남편과 대화할 필요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애정 결핍에 시달렸고 결혼해서도 외로웠던 남편의 우울증과 불안 장애는 점점 더 심해져 갔다. 그러나 남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던 군자씨는 이러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군자씨 남편의 우울증과 불안 장애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더 심해졌다. 가장 큰 원인은 돈이었다. 경제 관념이 없고 평생 돈을 아껴서 써 본 적이 없는 군자씨 남편은 결혼을 한 후에도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서 쓰곤 했다. 강남 한복판에서 돈을 아끼지 않고 살았으니 생활비는 턱없이 부족했고 매달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상황이 돌변했다. 이젠 철없는 막내아들을 도와줄 부모님이 사라졌고 군자씨네 생활비는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시부모님이 주시는 돈으로 풍족하게 살았던 군자씨에게도 경제관념은 없었다. 갑자기 돈에 쪼들리니 군자씨는 남편을 몰아세웠다. 당신 월급으로는 똑똑한 우리 딸들을 학원에 보낼 수도 없고 과외를 시킬 수도 없다면서 남편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군자씨가 아이를 키우던 1980년대에는 사교육이 금지되고 있었지만 부자 동네에서는 알음알음으로 불법 과외가 성행하고 있었다. 딸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싶었던 군자씨는 남편에게 고액 과외비를 요구했다. 자신의 월급과 맞먹는 고액 과외비를 마련하기 위해 군자씨 남편은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물정도 모르고 경제관념도 없는 군자씨 남편이 주식에서 돈을 벌 리가 만무했다. 군자씨 남편은 주식에서 돈을 벌지 못하니 대출을 받아서 딸들의 교육비를 대기 시작했다. 이번 달은 A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메꾸고 다음 달은 B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메꾸고... 매달 터지기 직전인 구멍을 틀어막으면서 군자씨네 가족은 강남에서 꾸역꾸역 이십 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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