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소설> 엄마의 인생 2

by 아르페지오

군자씨는 결혼을 한 후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군자씨 남편은 막내아들이었지만 합가를 하는 것이 결혼 조건이었기에 군자씨는 신혼여행 후 바로 시부모님이 살고 있는 돈암동 저택으로 들어갔다. 혼수를 해 줄 형편이 안 되던 군자씨 부모님도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눈치였다. 취향이 고급인 시어머니는 가구나 가전제품은 모두 본인이 준비하겠다며 혼수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했다.


돈암동 저택은 백 평이 넘었고 넓은 정원까지 있었지만 가사 도우미와 정원사가 따로 있어서 군자씨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시부모님은 막내아들 부부에게 2층을 내주었다. 사업을 크게 하고 계시던 시아버지는 집에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고 시어머니 또한 부부 동반 모임이나 바자회 등의 공식 행사에 자주 불려 나가셔서 군자씨는 큰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군자씨가 결혼하기 전에 살았던 집은 서울 외곽에 있는 작고 낡은 주택이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군자씨는 비좁은 집에서 식구들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조용히 책을 읽으려고 첫 장을 펼치면 엄마가 부엌일을 도우라고 불러냈고 바깥 풍경을 보면서 사색에 잠기면 남동생 방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고요를 깨뜨리곤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군자씨만의 공간이 생겼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출타하면 큰 집에는 군자씨 혼자 남았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상주하고 있었지만 아주머니의 방은 본관과 멀리 떨어진 대문 앞에 따로 있었다.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군자씨는 귀족이 된 것 같았다. 남편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결혼을 잘한 거라 생각했다.


군자씨는 돈암동 집에서 큰 딸과 작은 딸을 출산했다. 사업을 해서 생각이 깨어있던 시부모님은 손자보다 손녀가 좋다면서 손녀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다. 돈암동 저택에 살았던 5년은 군자씨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큰딸이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 시부모님과 군자씨 가족은 강남 아파트로 이사했다. 재계 인사 모임에도 많이 참석하고 여기저기 인맥이 많았던 시아버님은 강남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를 4채나 분양받아서 세 아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채에는 본인들이 들어갔다. 군자씨 부부는 시부모님의 집 바로 윗 층에 있는 아파트를 받았다. 돈암동에서도 시부모님과 위층, 아래층에 살았던 군자씨는 강남 아파트에서도 위층, 아래층에 살게 되었다.


아파트에서의 삶은 쾌적하고 편안했다. 시도 때도 없이 군자씨를 깜짝 놀라게 하던 벌레나 쥐도 나오지 않았고 한겨울에도 온 집안이 따스했다. 군자씨의 유일한 근심은 시부모님의 건강이었다.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가자 시아버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군자씨의 정성 어린 간병으로 3년을 버티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시어머니가 암에 걸렸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채 일 년도 돼서 세상을 떠났다.


4년 동안 군자씨는 시부모님의 간병을 도맡았고 두 분의 임종을 모두 지켰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도 결혼해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지만 시부모님 간병은 군자씨 차지였다. 부모님 집과 군자씨 집이 제일 가깝다는 게 이유였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집은 백 미터 거리에 있었으니 바로 위층에 살았던 군자씨 집이 제일 가깝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군자씨도 마음의 빚이 있었기에 시부모님께 최선을 다했다. 부유한 시댁은 빚에 시달리고 있던 군자씨 친정 생활비를 십 년 넘게 대주었다.


백 평이 넘는 저택에서 운전기사에 정원사까지 두고 살던 시부모님이 남긴 재산은 달랑 아파트 한 채 밖에 없었다. 그 집 한 채마저도 장남이 가져가 버렸다. 이제 군자씨 가족에게 남은 것은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삼십 평짜리 강남 아파트 한 채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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