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지켜보면 볼수록 아빠와 아들은 이상하고도 이상한 관계이다.
아들이 어렸을 때, 아빠와 아들은 사이가 좋았다. 남자아이라서 몸으로 하는 놀이를 좋아하니 엄마보다 아빠랑 노는 것을 좋아했고 아빠랑 같이 운동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사이좋게 잘 지냈다.
그런데 아들이 훌쩍 커서 덩치가 아빠만 해지면서 둘 사이가 대면대면해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몸은 성인이지만 마음은 아직 그만큼 크지 못한 사춘기 아들에게 아빠는 높은 기준을 내세우며 훈육을 하려 했다. 성인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규칙이었지만 아직 어린 아들에게는 버거운 것들을 요구하니 아들과 아빠 사이가 삐끗거리기 시작했다. 둘은 시도 때도 없이 티격태격했지만 대부분의 싸움은 아빠의 완승이었고 아들은 점점 아빠를 피하게 되었다. 사이가 좋던 부자가 서먹해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엄마는 별짓을 다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들과 아빠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대화를 하지 않았고 예전처럼 장난을 치지도 않았다. 오빠도 없고 남동생도 없어서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엄마는 변해버린 아들과 아빠의 모습에 어리둥절해하며 주변에 자문을 구했다. 아들을 키운 선배 맘들과 심리학 서적에서 이 과정이 아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했기에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로 했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포기한 엄마는 중간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사춘기 아들이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면 순화된 언어로 아빠에게 전달했고 아빠가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에도 부드러운 어조로 아들에게 전달을 하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조그마하던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게 되었다.
개발자로 취업한 아들은 오전 9시쯤 겨우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10시쯤 집을 나선다. 회사가 30분 거리이니 10시 반이나 11시까지 가면 되는 듯하다.
며칠 동안 아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내게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신입 사원이 저렇게 늦게 출근을 해도 되는 것인지, 도대체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아들이 주말에 외출했다가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으면 회사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는 주말에는 쉬었으면 좋겠다 등등... 남편의 걱정과 푸념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오전 9시만 되면 오분에 한 번씩 아들 방을 쳐다보면서 빨리 깨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게 묻는다.
오늘 아침에도 아들이 일어나지 않으니 초조해하는 남편 모습을 지켜보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피식 웃었다.
남편은 아침형 인간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아침을 먹고 책을 읽거나 업무를 시작한다. 그러나 남편이 아침형 인간이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이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출근할 때 남편은 자고 있었다. 게임을 하다가 늦게 자는 남편은 오전 8시나 9시쯤 일어나는 듯했고 9시까지 사무실로 출근해야 하는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오전 7시 반에 집을 나섰다. 오전에 일찍 집을 나서려면 주차장에 이중으로 주차된 차를 밀고 나가야 했는데 대부분은 알아서 해결했지만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움직이지 않는 큰 차가 앞에 있을 때는 남편을 깨워야 했다. 아직 잠이 덜 깬 남편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내려와서 차를 밀어주고 집으로 올라갔는데 그 모습을 보고 출근하면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아서 웬만하면 남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매일 새벽에 출근하면서 큰 차를 밀다가 손목을 삐끗한 적도 있도 했고 넘어져서 옷이 찢어지기도 했다.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에서 일했고 오전 8시나 9시쯤 일어나서 집에서 업무를 시작했으니 아내의 이런 고충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집에서 일하는 남편이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운동복을 입고 집에서 편하게 일을 하고 있는 아빠와 매일 새벽같이 출근했다가 저녁 9시가 넘어야 겨우 집에 들어오는 엄마를 지켜보던 아들이 어느 날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엄마, 내 꿈은 아빠 같은 회사원이 되는 것이에요".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아들은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고 오후 6시면 모든 업무가 끝나는 아빠의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웠던 모양이다. 생각지도 못한 아들의 말에 너무 놀랐지만 아빠처럼 집에서 일하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이고 대부분의 회사원은 엄마처럼 출퇴근을 한다고 말해줬더니 아들이 화들짝 놀랐다. 아들은 엄마도 회사원이었냐고 되물었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나는 남편이 집에서 일을 하더라도 복장을 단정하게 갖추고 아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면 했다. 그러나 아들이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아빠는 항상 편한 복장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들은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이상적으로 상상했던 것 같다. 아들은 아빠에게 인생을 배운다는데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집에서 일을 하더라도 너무 풀어진 모습을 보이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남편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의 예전 모습을 다 잊어버렸는지 내게 아들 걱정을 늘어놓고 있다. 아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아빠가 적어도 오전 8시에는 일어나서 단정하게 옷을 입고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다는 것을 남편은 기억할까? 우리 집 두 남자 덕분에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며 혼자 피식 웃었다.
차 한잔 하면서 남편애게 요즘 아들의 모습이 젊을 때 자신을 많이 닮았다는 것을, 그대도 마흔 살까지는 지금의 아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그대가 잘 해내고 있는 것처럼 아들도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