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지적을 먹으며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내가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을 항상 먼저 지적하셨다.
과외 한번 받지 않고 학원도 다니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진학했다. 물론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반장, 부반장을 도맡아 하고 경시 대회에 나가서 가끔 상도 타왔던 내가 엄마에게는 꽤 자랑거리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친구들을 만나면 내 자랑을 하시는 엄마는 유독 내게는 칭찬에 인색하셨다. 경시대회에 나가서 은상을 타오면 왜 금상을 타지 못했냐고 질책을 받았고 반에서 일등을 놓치면 다음번에는 잘할 수 있겠지라고 무언의 압박을 주셨다.
엄마의 레퍼토리 중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엄친아였다. 우리 집안에는 왜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사촌들이 모두 S대를 가서 학창 시절 내내 S대와 비교를 당했다. 겨우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엄친아들이 등장했다. 첫 월급을 타서 뿌듯한 마음에 봉투째 가져다 드렸더니 다른 애들은 한 달에 몇백은 버는데 이렇게 쪼금 벌어서 어떻게 사냐고 걱정부터 하셨다. 친구들과 비교해 보니 내 월급이 적은 것은 아니던데 대체 엄마의 기준은 왜 이리 높은 건지. 아이비리그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취업한 그들과 나는 다르다며 대들고 싶었지만 꾹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엄마와 나의 사이가 나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모녀 사이는 전혀 나쁘지 않다. 우리는 사이좋은 모녀이고 결혼하고 26년째 엄마를 모시고 살고 있다. 나는 그저 엄마가 가끔씩 무심코 흘리는 남들과의 비교가 싫을 뿐이다. 왜 엄마는 좋은 것을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실까? 딸이 취직을 해서 월급봉투를 통째로 드리면 좋다고 말씀해 주시면 안 되는 걸까? "AA는 돈을 잘 벌어서 부모 용돈을 한 달에 오백만 원씩 준다는데"라는 말을 꼭 내게 하셔야 할까?
나는 한 달에 오백만 원씩 용돈을 드릴 능력이 안 되고 우리 부모는 내가 한 달에 몇 천만 원씩 벌 수 있도록 유학을 보내 주고 뒷바라지를 해 줄 능력이 없었다. 그 집안과 우리 집안은 서로 사는 세상이 다른데 왜 자꾸 나를 친구 아들과 비교하시는 걸까? 그리고 꼭 그런 말들을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내게 흘리시는 걸까?
어렸을 때는 엄마의 말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어떤결과에도 만족하지 못했고 항상 자신을 질책하며 살았다. 되돌아보니 내 인생이 그렇게 나쁜 성적은 아니었는데 항상 자책을 했던 내 성격에는 엄마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가족끼라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나는 엄마의 유일한 첫째 딸이고 엄마는 나의 소중한 엄마이다. 내가 엄마를 다른 엄마와 비교하지 않듯이 나도 그 어느 누구의 자식과 비교당하고 싶지 않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여전히 엄마는 내게 참 어려운 존재이다.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절대 만족시킬 수 없는 존재, 그것이 나의 엄마이다.
날이 더워서 기력이 없으니 며칠 동안 집 안에만 틀여 박혀 있다가 오랜만에 조카를 만나려 길을 나섰다. 현관 앞에서 엄마와 마주쳤는데 나를 아래위로 흝어보시더니 '신발이 틀렸어.'라고 하셨다. 조카를 만나러 가느라 나름 신경을 써서 제일 예쁜 원피스를 꺼내 입고 운동화를 신었더니 그것이 거슬리셨나 보다. 이십 년 넘게 하이힐을 신고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일을 해서 구두를 신지 못한다. 딸이 구두를 신지 못하는 것을 아시면서도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은 것이 그렇게 거슬리셨을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신발이 이것밖에 없어요.'라고 대답하고 나오는데 셀레던 마음이 산산이 깨져버렸다. 오랜만에 외출하는 딸의 기분을 이렇게 산산이 부수어야 했을까? 애써 마음을 달래 봤지만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들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와서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나도 안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끊임없이 지적을 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도 이젠 먼저 칭찬을 해주시고 지적을 하셨으면 좋겠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인데도 여전히 엄마 앞에서 나는 열 살의 어린아이가 되어 주눅이 든다. 언제쯤이면 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아직도 엄마의 지적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