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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Feb 08. 2021

형님과 동서 2

대동맥류로 투병하시던 시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되지 않아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요양 병원에서 홀로 외롭게 가셨다. 월요일 오후 회의에 들어가려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 가까운 에 사는 동서는 벌써 도착해 있었다. 공무원인 막내 서방님은 휴가를 내려면  인수인계를 해야 해서 몇 시간 후에나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장례식장을 정해야 시신을 옮길 수 있다는데 코로나 시국에 장례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첫째가 아난데 첫째 역할을 해야 하는 남편과 맏며느리도 아닌데 맏며느리 역할을 해야 하는 내가 어머님과 상의해서 장례식장을 결정하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이동했다.


어머님을 모시고 엠블란스를 따라가면서 중국에 있는 큰 에게 연락하셨냐여쭤봤더니 아직 연락도 안 하셨다고 하셨다. 자가격리 때문에 어차피 장례식에 오지도 못할 텐데 못하러 연락을 하냐고 하시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남편이 형에게 부고를 알렸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이것저것을 결정하고 빈소를 차렸다. 결혼한 후 이십오 년 동안 외국에 사는 큰아들 내외 대신 맏아들, 맏며느리 노릇을 해 온 것은 익숙했지만 장례식 준비는 서툴고 두렵기까지 했다.


얼마 안 있어 막내 서방님도 빈소에 도착했고 모두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았다. 코로나 때문에 조문객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직접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좁은 장례식장에서 힘들어하는 조카를 먼저 집에 먼저 보내고 자정이 넘어까지 빈소를 지키다 집으로 돌아왔다.(조카는 자폐를 앓고 있어서 익숙하지 않은 환경을 힘들어한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잠도 오지 않아서 필요한 것을 챙겨서 새벽같이 다시 빈소로 향했다.


둘째 날은 가족 친지분들이 많이 오셔서 정신없이 바빴다. 잠시 조문객이 없을 때 동서와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동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큰 아들이 장례식에 오지 않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만 해보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경우엔 빠른 입국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코로나를 핑계로 오지 않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입국 절차도 알아보지도 않고 상주 노릇을 하느라 정신없는 남편에게 전화만 해대는 아주버님과 슬픔에 무너질 것 같은 어머님께 전화를 해서 자신이 더 슬픈 것처럼 울어대는 형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폐 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아이 때문에 자꾸 자리를 비워야 하는 동서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동서가 내게 미안할 게 하나도 없는데. 정작 내게 미안하다고 해야 할 사람은 형님인데 그녀는 끝내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맏며느리도 아닌데 25년간 맏며느리 역할을 해왔고 이젠 시아버님 장례식에서 맏며느리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내게 아무런 연락조차 없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삼우제를 치른 후에도 그리고 1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녀는 내게 전화 한 하지 않았다.


해마다 한국에 와서 한 두 달씩 지내다 중국으로 돌아가면서도 제사나 명절은 기막히게 피해서 오는 그녀를 보면서 내가 짊어진 맏며느리 역할을 덜어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맏아들 없이 둘째와 셋째가 지키고 있는 아버님 장례식장에서 슬펐다 분노했다 감정을 오르내렸더니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갔다. 집에 돌아와서도 갑자기 눈물이 나서 멈추지 않고 분노가 치민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언제나 본인만 힘들고 아프다는 징징대는 그녀를 장례식장에서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날 다독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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