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형님과 동서가 있다.
형님은 나보다 여섯 살이 많다. 여섯 살 차이는 궁합이 좋지 않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형님과 나는 사이가 좋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십오 년 동안 거의 만나지 못했기에 서먹한 사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형님은 결혼한 후 계속 외국에서 살았다. 큰 며느리이지만 일 년에 4번 있는 시댁의 제사와 차례에 참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해마다 한국에 와서 한 달 넘게 머물다 가지만 기가 막히게 명절과 제사 기간을 피해서 온다. 둘째 며느리인 내가 제사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 억울하지만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산다. 이십오 년 넘게 제사를 지내면서 명절 음식이 지긋지긋해서 전을 먹지 않는 내게 제사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동서가 부럽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지 않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동서는 나와 동갑이다. 동서와 나는 동갑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잘 통했다. 제사 때마다 하루 종일 같이 음식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친해졌다. 우리는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시댁의 대소사를 처리하면서 서로 배려하며 잘 지낸다. 하나뿐인 동서랑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동서는 자폐아를 키우고 있다. 아이가 3살 되었을 때쯤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자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해로 열여덟 살이 된 조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아이가 고등학교만이라도 졸업하기를 원하는 동서는 매일 아이와 함께 등교한다. 혹시라도 아이가 이상 행동을 하면 제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장애인 학교로 옮기기를 원하는 눈치이다. 그러나 자페 아동은 갈 곳이 없다. 중증 장애인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애인 학교에서는 자폐아가 받을 수 있는 교육이 없다. 입시 일정에 쫓겨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반 고등학교에서도 자폐아가 받을 수 있는 교육은 없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판타지는 현실에 없다. 현실에서는 최수연 같은 친구도 강기영 같은 스승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들이 왜 외국으로 가는지 알게 되어 서글프다.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가 크면 클수록 고민이 많아진다. 아이가 힘이 세지니 통제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렵고 내가 늙고 병들면 누가 내 아이를 누가 돌봐줄까 하는 걱정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힘든 동서에게 또 시련이 닥쳤다. 동서 친정어머니가 암인데 하필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황이란다.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 내가 너무 속상해서 엄마한테는 마음속 이야기를 다 했는데 그래서 엄마가 암에 걸린 것 같다"며 동서가 울먹였다.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동서 손을 잡고 나도 같이 울었다.
그런데 며칠 전, 동서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동서는 장례가 끝날 때까지 시부모님과 내게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코로나가 심할 때라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고 담담하게 전하는 동서의 전화를 받고 수화기 너머로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동서에게 닥치는 시련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안 그래도 힘든 사람에게 왜 이렇게 힘든 일이 계속 일어나는지 세상이 원망스럽다.
동서가 괜찮았으면 좋겠다. 아니 동서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