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지인의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만나기로 했던 날, 남편이 아파서 응급실에 간다고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 연락을 하려다 망설였는데 부고를 듣고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녀와 나는 초등학교 때 학부모로 만났다. 살고 있는 동네가 학구열이 높은 곳이라 은근히 워킹맘인 나를 따돌리는 것을 느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나를 살갑게 대해주던 유일하게 따스한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이십 년 넘게 이어졌고 가끔 동네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곤 했다. 만나야 할 때가 지났는데 연락이 없어서 전화를 해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몇 번을 그만두었다. 요즘 남편이 자꾸 아프다고 걱정하던 모습이 아른거려서 선뜻 전화를 걸 수 없었다.
그런데 지인으로부터 그녀 남편 부고를 전해 들었다. 아직 막내는 대학생이고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을 돌보느라 항상 분주했는데 갑자기 남편까지 세상을 떠났다니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대학 동창의 어머니는 치매로 투병 중이시다. 아직 중증 치매는 아니라서 친구가 곁에서 돌보고 있는데 멀리서 지켜보는 내가 느낄 정도로 상황이 안타깝다. 친구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시고 홀로 자식 셋을 키우느라 30년 넘게 직장을 다니셨고 십여 년 전에 은퇴하셨다. 교직원으로 30년 넘게 근무하셨기에 연금이 꽤 나온다고 하는데 정작 그 돈을 쓸 곳이 없는 듯하다. 자식들에게 덜컥 주기는 싫으신 것 같고 치매 증상이 있으니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 어머니가 유일하게 돈을 쓰는 곳은 백화점 화장품 매장이다. 분기마다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 가서 한 시간씩 수다를 떨다가 직원들이 권하는 제품을 깡그리 구매해 오신다고 한다. 친구는 80이 넘은 나이에 화장품에 몇 백만 원을 쓰는 엄마가 밉다고 말한다. 저녁에 10개의 화장품을 단계별로 바르고 있는 엄마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서 엄마가 세안을 할 때쯤 집으로 온다고 한다.
그녀 엄마는 너무 바쁘게 사느라 자식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지는 못하셨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이상하게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는 딱 한 번만이라도 엄마가 집에서 자신을 기다려주고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 것이 어린 시절 소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빨리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빨리 이 집에서 떠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아마도 그녀 오빠도 남동생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엄마와 소원했던 자식 셋은 성인이 된 후 하나씩 독립해서 떨어져 살았다. 그런데 치매가 와서 도움이 필요해진 엄마가 갑자기 손을 벌리니 자식들 모두 황당해했다. 부모 자식 간의 정을 쌓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간병을 하라니 오빠와 남동생은 처음부터 발을 빼 버렸다. 결국 엄마 가까이에서 사는 내 친구가 간병을 맡기로 했지만 그녀 또한 엄마에게 서운함이 많은 딸이다. 그녀가 아이 둘을 낳고 워킹맘으로 아등바등할 때 엄마는 은퇴 생활을 즐겨야 한다며 그녀를 외면했다. 연금으로 은퇴 생활을 멋지게 즐기던 그녀 엄마는 손주, 손녀에게 할애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간병을 해 달라고 하니 아무리 딸이라도 달가울 리가 없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홀로 지내고 계신 어머님은 웬만한 일이 아니면 자식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으신다. 바쁜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이 강하신 듯하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 팔순이 넘은 어머님 혼자서 처리하기 어려운 일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집으로 찾아뵈면 수첩을 꺼내서 이것저것 물어보시는데 와이파이 공유기가 꺼져서 며칠 동안 유튜브를 못 보신 적도 있었고 TV 케이블이 빠져서 며칠 동안 TV를 못 보신 적도 있었다. 아들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전화를 하라고 하지만 어머님은 괜찮다며 손사례를 치신다.
언젠가는 나도 친구 어머니처럼 정신이 흐려질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어머님처럼 나이가 들어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나이가 든 사람들을 배려해주지 않는다. 세상은 노인을 기다려주지 않고 점점 더 빨리 변해간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는지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낙엽이 다 떨어진 나무를 보다가 문득 나이 든다는 것이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