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주거를 분리한 후 매일 글을 썼다. 속에 있는 것을 뱉어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글로 풀어냈다. 때론 브런치에, 때론 일기장에, 때론 손글씨로 매일 무언가를 썼다. 글을 쓰면서 다시 느꼈다. 글쓰기가 나를 살게 해 주었다는 것을.
은퇴할 무렵에도 글을 많이 썼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몸 바쳐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데 만신창이가 되어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그 마음을 글로 썼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나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고 따스한 답글을 달아주었다. 따스한 위로 덕분에 직장 생활 25년을 채우고 은퇴할 수 있었다.
엄마와의 아름답지 않은 이별 후에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글을 쓰면서 위로를 받았다. 글을 쓰면서 이십 대의 나, 삼십 대의 나, 사십 대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그만하면 됐다, 그만하면 잘 버텼다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는데 왜 나 혼자 모든 짐을 떠안았던 것인지, 엄마는 왜 둘째에게는 아무런 요구도 안 하면서 큰 딸에게만 기대려 했던 것인지, 딸에게 오십은 아직 창창한 나이라고 하던 엄마는 왜 정작 오십의 나이에 경제적으로 자립할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인지, 그리고 대체 왜 나는 이 모든 것을 다 떠안고 참고 인내하고 살았는지.
일이 터지고 나서 친구들을 만났다. 그녀들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더니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지금부터라도 네 인생을 살아."
소설 "모녀의 인생"은 엄마와 이별하기 위해 쓴 글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 고통스러운 과거를 뒤돌아봐야 했다. 엄마의 관점에서 글을 쓰면서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직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 과연 이 또한 지나갈까? 과연 이 또한 잊힐까?
이제 나는 엄마를 내 삶에서 지우려고 한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쫓기듯이 회사에 출근했던 20대의 내가, 몸이 아파도 그저 버티고 또 버티던 30대의 내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고군분투하던 40대의 내가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엄마가 이사 간 날,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를 찾았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수면제를 처방해 주었다. 일단 잠이라도 푹 자고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했다. 의사의 말대로 일단 잠이라도 푹 자고 내일을 시작해 봐야겠다.
대체 몇 살쯤 되면 인생이 평온해지는 것일까?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노부부의 평안한 얼굴이 사무치게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