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유품

by 아르페지오

서랍을 정리하다가 할머니의 유품을 찾았다. 한동안 잊고 있어서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어린 시절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 주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사실 우리 집은 할머니 집 위층이었고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위층과 아래층을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온전히 할머니 집에서 살았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 집에서 보냈고 잠도 할머니 집에서 잤으니 할머니랑 살았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원래는 아파트 같은 동의 위층에 우리 가족이 살았고 아래층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신 후 쓸쓸함을 견디기 힘드셨던 할머니는 아예 손녀딸 방을 꾸미고 나를 데려갔다. 엄마는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사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할머니가 너무 오냐오냐해서 내 버릇을 망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와 있는 시간이 좋았다. 할머니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주셨고 먹고 싶은 것도 다 사주셨다. 여덟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다시 엄마, 아빠 집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3년이나 따뜻한 할머니 품에서 지냈던 나는 엄마의 엄격한 규율에 적응하느라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파트에 살기 전에는 할아버지 집에서 3대가 같이 살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일곱 살 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으니 나의 유년 시절 기억은 온통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 소중한 기억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사는 게 바빠서 그랬는지, 나이가 들어서 그랬는지 언제부터인가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랍 속에서 할머니 유품을 찾았다. 사업을 하시는 할아버지 때문에 재계 모임이나 부부 동반 모임이 많았던 할머니의 옷장에는 드레스와 보석이 가득했다. 나는 할머니 드레스를 입고 인형 놀이를 하거나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공주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꽤 비싼 것들이었을 텐데 할머니는 드레스와 반지, 목걸이들을 맘껏 가지고 놀게 해 주셨다. 오색빛깔 드레스를 입고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을 두르면 진짜 공주가 된 것 같아서 할머니 보석함을 장난감보다 훨씬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 물건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며 엉엉 울던 나에게 엄마는 할머니 유품 몇 개를 추려 주었다. 병원비 때문에 비싼 보석들은 다 내다 팔았던 것 같고 내게 남겨진 것들은 모조 보석들이었다. 그러나 어린 내게 모조 보석이건 진짜 보석이건 상관없었다. 그저 할머니의 물건이라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할머니 목걸이를 꺼내서 어루만지면서 울다가 잠이 들었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중학교에 가서도 외로울 때마다 할머니 유품을 꺼내서 보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할머니도, 할머니 유품도 잊고 지냈다.


오래된 모조 목걸이는 녹이 슬고 부품이 떨어져서 짝짝이가 되어 있었다. 서랍 속에서 여기저기 굴러 다니다가 부품이 빠진 것 같은데 소중한 할머니 유품이라 고쳐서 쓰고 싶었다. 액세서리 상자를 뒤져서 비슷한 모양의 귀걸이를 찾아내서 목걸이 끝에 연결해 주었다. 오전 내내 돋보기를 쓰고 낑낑 대면서 목걸이를 수선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남편이 한 마디 했다. 목걸이가 필요하면 제대로 된 것을 하나 사지 왜 쓸데없이 진을 빼냐고. 그러나 이 목걸이는 내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목걸이를 하면 할머니가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정성스레 녹을 닦고 비슷한 모양의 구슬을 달아주었더니 멋진 목걸이가 탄생했다. 강의하러 가는 날, 할머니 목걸이를 하고 갈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추억이 담긴 물건은 가치를 매길 수가 없다. 할머니 유품이 하나라도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다.


잊고 있었는데 내가 엄마와 정을 쌓지 못했던 이유는 유년 시절 대부분을 할머니 품에서 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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