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햇살 같은 친구들을 만나고 왔다.
그녀들과 나는 회사 동료로 만났다.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우리들은 처음에는 대면대면하게 지냈지만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열 명 남짓한 부서에 비슷한 또래가 4명이나 있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우리는 공통점이 참 많았다. 우리는 나이도 비슷하고 성향도 비슷했다. 네 명 모두 생일이 1월이라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또래보다 학번이 빨랐고 연예를 하고 일찍(이십 대 중반) 결혼을 했고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한 명만 빼고 모두 아들 하나 혹은 아들 둘이라는 점도 비슷했다. 당시에는 MBTI가 유행하지 않아서 그녀들의 MBTI는 모르지만 MBTI 결과도 비슷할 것 같다.
출근해서 커피 자판기 앞에서 그녀들과 수다를 떨던 시간이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하나둘씩 이직을 하면서 그녀들과 매일 만날 순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서로 소식은 전하고 드문드문 얼굴도 보며 지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벌써 이십오 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서울의 끝자락에 살고 있는 언니에게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동생들을 만나러 가자고 청했다. 모든 것에 신중하고 결정이 느린 언니는 분명 망설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나섰다.
기차표를 끊고 동생들을 만나러 가는 날을 고대하면서 가슴이 설레었다. 이십 대 끝자락을 같이 보낸 그녀들을 만나면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셀레는 마음에 그 시절 일기장을 챙겨서 기차를 탔다. 그 시절 추억을 꺼내서 그녀들과 공유하고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기장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나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 시절 나는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버터내고 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끝도 없이 내게 기대기만 하는 부모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어느 날 하루는 회사에서 맨날 당하기만 하는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맞벌이인데도 집안 일과 육아를 전혀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고 어느 날 하루는 아이에게 화풀이를 한 내게 실망하고 있었다. 처참한 나의 시간이 고스란히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었고 활자로 적힌 나의 마음을 읽으니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다시 살아났다.
만약 이 감정들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나는 세상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망각 덕분에 평안해진 것인데 괜스레 아픈 상처를 들춰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내가 너무 불쌍해서 펑펑 울다가 겨우 눈물을 닦고 기차에서 내렸다.
오송역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녀들을 만났다. 같이 오기로 한 언니는 나와 다른 기차를 타고 오기로 해서 아무에게도 울음을 들키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는 순간 내가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들을 만나는 순간 모든 슬픔이 사라졌던 것이다. 우리는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깔깔거리고 웃으며 쌓인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녀들이 내 은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들이 나를 지탱해 줬기에 나는 모진 삶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매일 아침 그녀들을 만나서 커피를 마시며 웃을 수 있어서 잠시나마 고된 삶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내게 햇살 같았던 그녀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인생이 힘들다며 그녀들과 연락을 끊고 잠적하지 않은 나를 칭찬해 주었다. (우리 넷은 원래 다섯이었다. 세상이 착한 그녀를 자꾸 힘들게 하는 것 같더니 그녀로부터의 연락이 뜸해졌고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후로 그녀와의 연락은 끊겼다.)
사는 곳이 멀다고 불평하지 말고 가끔 기차를 타고 그녀들을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