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채용 프로세스를 통한 것은 아니고 단순한 제안이었지만 이 제안은 며칠 동안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은퇴한 지 2년 반, 이미 유목민의 삶에 익숙해졌는데 다시 회사원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상처가 많이 아물었지만 그들과 다시 일을 해도 괜찮을까, 어느덧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최신 기술을 다루는 일을 잘할 수 있을까 등등 오만가지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며칠 동안 고민에고민을 거듭한후에 하고는싶지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일을 하면 내가 얼마나 힘들 것인지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막상 일을 시작하게 되면 생각지 못한 많은 변수도 튀어나올 것이다. 그런데 시작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고 있다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
둘째, 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나와 결이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기에 이것은 제안을 거절해야 할 큰 이유였다. 게다가 이마실패했던 사람들 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나의 패배를 재확인하는 것밖에 안 될 것 같았다.
셋째, 내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니 나는 그 일을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일을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니고 남들에게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면 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를 해서 2년 반의 시간을 보내보니 생각보다 돈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시점에 풀타임으로 다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은 꽤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도 그대로 있고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제 발로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고심 끝에 거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다시 돌아올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은 따스하고 고마웠다. 25년 내내나의 가치를 알아봐 달라고울부짖었건만 외면당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적어도 한 명은 나를 기억해주고 있다니 큰 위로가 되었다.
생각을 할 때 많이 걸었는데 걷다가 발견한 문양이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 놓았다. 난간에 들꽃과 똑같이 생긴 무늬가 있었는데 이것이 꽃이 날아와서 자연스럽게 생긴 문양인지 그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인지 궁금했다. 만약에 꽃이 바람에 날려 난간 위에 쌓여 있다가 난간을 잡고 걷는 사람들의 손으로 눌려져서 자연스럽게 문양이된 것이라면 저렇게 지는 것도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