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두 명의 친구를 지우기로 했다.
지워버린 친구 중 한 명은 대학 동창이다. 그녀와 나는 30년 지기이지만 애매한 사이로 오랫동안 만남을 이어왔다. 그녀와의 인연은 오래되었지만 나는 그녀와 1미터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첫 만남부터 그녀는 가까이 다가오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녀와의 간격을 좁힐 수가 없었다. 나와 너무 결이 다른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1 미티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나를 좋아하는 그녀를 매몰차게 내칠 수도 없어서 애매한 인연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그녀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끔찍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고 도청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가족들까지 의심하면서 가족들과의 연까지 끊었다. 그녀 말대로라면 세상에는 정상인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면 세상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말하는 일화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끔찍한 것들로 가득했다. 그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두가 추문에 연관되어 있다고 했다. 출세한 동기들은 상사와의 스캔들에 연루되어 있다고 말했고 큰 병을 앓았던 지인들은 가정 폭력 희생자라고 했다. 반론을 제기해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지인들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의 지인이지만 나의 지인이기도 한 그들에게 끔찍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사실 여부를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도 같이 병들어갔다. 그녀는 만날 때마다 쉴 새 없이 끔찍한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듣고 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그녀는 끊임없이 세상이 끔찍하다고 나를 세뇌시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서 넌지시 권했지만 그녀는 펄쩍 뛰었다.
그녀와의 끈을 겨우 부여잡고 있던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나와 똑같은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고 통보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한탄하고 있었으니 개명하려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수많은 이름이 있는데 하필 30년 지기 친구 이름으로 개명을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나마 내 이름이 흔한 이름이라면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했다. 그러나 나는 오십 평생 똑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꼭 내 이름을 자신의 새로운 이름으로 택해야 했을까?
고민을 하다가 결심했다. 더 이상 그녀를 만나서는 안 되겠다고. 안타깝고 애틋해서 그녀와의 인연을 부여잡고 있었지만 그녀는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나는 그녀를 내 인생에서 지우기로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회사에서 만난 인연이다. 너무 세 보이는 인상 때문에 처음에는 그녀를 멀리했다. 그러나 그녀는 끊임없이 내게 호감을 표하며 다가왔고 남자들만 가득한 회사에서 여자들끼리 느낄 수 있었던 동료 의식 덕분에 서서히 그녀와 가까워졌다. 내가 승진에서 미끄러졌을 때도, 그녀가 회사에서 잘렸을 때도, 내가 은퇴를 했을 때도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그녀는 만날 때마다 다른 사람 험담을 했다. 동료들이 자신을 시기하고 있다고 말했고 자신의 실패를 다른 사람의 시기와 방해 탓으로 돌렸다. 재테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번 동료들은 회사에서 일은 하지 않고 딴짓을 해서 한다고 욕했고 일을 잘해서 승진한 동료들은 어떻게든 약점을 찾아내서 흠집을 내려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조차 믿지 못하고 의심했다. 남편이 외도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 모든 남자는 외도를 한다고 확신했다. 심지어 나의 남편도 외도를 하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내가 반론을 제기하면 그녀는 내가 순진해서 세상을 너무 모른다며 펄쩍 뛰었다. 그리고 다시 괴변을 늘어놓았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내 말울 듣지 않았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잊어버리고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곤 했다. 그녀는 내게 관심이 없었고 그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었는데 친구가 필요했던 나는 애써 부인하려 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와 의심으로 가득 차서 나까지 검은색으로 물들이려고 하는 그녀와의 인연을 그만 끊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처음부터 서로 맞지 않음을 알았다. 만나면 이상한 소리를 할 텐데, 만나면 또 험담을 할 텐데, 만나면 괴로울 것이 분명해서 차일피일 약속을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쯤 한 번씩 만나곤 했다.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질질 끌어 왔지만 이제 그만 그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제는 깨끗이 포기해야겠다.
부디 그녀들이 병든 마음을 치유하고 자신이 만든 감옥에서 탈출하기를 바라면서 한 해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