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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Dec 11. 2024

마지막 잎새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15년을 함께 한 반려견 별이가 아팠기 때문이다. 모든 일상을 멈추고 아픈 별이를 간호하는데 나의 모든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별이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별이가 아파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집 앞 목련나무에 헛된 기대를 걸어보았다. 목련나무 잎사귀가 남아있을 때까지만이라도 별이가 살아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어느 해보다 포근한 겨울 날씨 덕분에 목련나무 잎은 11월 중순까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희망도 같이 커져만 갔다.

11월 마지막  어느 날, 갑자기 폭설이 내렸고 폭설과 함께 찾아온 강풍은 목련 나무 잎을 매몰차게 떨어뜨렸다. 매일 아침 몇 개 남지 않은 목련나무 잎사귀를 보면서 제발 별이의 생일까지만 버텨달라고 기도했다. 나의 기도가 통했는지 12월 첫째 주가 지나도록 목련 나무에는 아직 열 개가 넘는 나뭇잎이 남아있는데 우리 별이는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혹여라도 별이가 잘 버티고 있는데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려고 하면 오헨리의 소설처럼 잎을 그려 넣으려고 했는데 별이는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두 달 동안 별이를 고치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면서 지옥을 맛보았다. 어떤 의사는 제대로 진찰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라고 했고 어떤 의사는 위험하긴 하지만 수술을 해보라고 했다.


강아지 나이 15살은 사람의 80대와 비슷한 나이이다. 나이가 많은 별이가 마취와 수술을 견딜 수 있을지 두려웠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밥 한술, 물 한 모금 넘거지 못하고 앙상하게 말라가는 별이를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수술을 결심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수술을 잘한다는 큰 병원으로 찾아갔다. 별이가 수술실에 들어간 후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를 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별이는 마취에서 깨어나 내게로 걸어왔다. 수술 후에는 며칠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해서 별이를 입원시키고 집에 돌아와서 몇 주 만에 다리를 뻗고 었다.


그런데 내가 마음을 놓자마자 별이에게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술 다음 날 자정, 알부민 수치가 낮아알부민 수혈을 해야 한다는 전화가 왔다. 의사가 고지하는 알부민 수혈의 부작용은 무시무시했지만 알부민 수혈을 하지 않으면 더 위험하다는 말에 동의를 했다. 다음 날 면회를 갔는데 별이는 수술한 날보다 더 안 좋아 보였다. 수술한 지 이틀이 지났는데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원래 수술하고 이틀, 사흘 째가 더 아프다고 했다. 의사의 말을 믿고 떨어지지 않는 벌걸음을 겨우 떼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적혈구 수치가 떨어져서 수혈을 해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왜 맨날 면회도 안 되는 밤에만 응급 상황이 발생하는 것인지, 별이 상태를 보고 결정하고 싶었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수혈을 하지 않으면 더 위험하다는 의사의 말에 수혈을 허락했다.

  

그런데 다음 날 수혈 부작용이 나타났다. 초회 수혈은 거의 부작용이 없다는데 왜 하필 별이에게만 부작용이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15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힘든 수술을 견뎌내고 회복하려고 애를 쓰던 별이는 점점 힘이 없어지고 혼자 서지도 못하게 되었다. 차가운 병실에 아픈 별이만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어서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병원에서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새벽에는 면회가 불가했지만 친절한 간호사는 새벽에도 한두 번씩 별이를 보게 해 주었다.


가족들의 정성 때문인지 별이는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별이가 입원한 지 열흘이 되던 날 몇 일간의 밤샘으로 지친 나는 새벽 한 시쯤 별이를 마지막으로 보고 집으로 향했다. 2,3시간만 눈을 붙이고 다시 병원으로 가려고 했는데 5시 알람 소리에 일어나지 못했다. 오랜 간병으로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오전 7시쯤 겨우 일어나서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는데 면회를 시켜주지 않고 자꾸 기다리라고만 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간호사가 우리를 응급실로 데리고 가면서 별이에게 심정지가 왔다고 했다. 어제까지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고 걷던 아이인데 믿을 수가 없었다. 응급실에 가니 별이가 축 늘어져 있었고 의사가 기도에 삽관을 해서 별이의 호흡을 돌아오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별이의 손을 잡고 주저앉았다. 그 사이 의사와 간호사들은 정신없이 별이에게 주사를 놓고 산소를 주입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다행히 별이의 호흡이 돌아왔다.  


의사는 내게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고 말했다. 수혈을 하면서 병원에서 좀 더 치료를 해보는 것과 집으로 데려가는 것, 다만 이미 심정지가 왔던 아이이기 때문에 수혈을 하다가 다시 심정지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에 데려가는 도중에도 심정지가 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울면서 무조건 집에 데려가겠다고 했다. 별이 몸에 붙어있던 온갖 바늘과 튜브를 떼고 별이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별이가 차 안에서 숨을 거둘까 봐 백번도 넘게 별이를 확인했는데 다행히 별이는 잘 버텨 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별이를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에게 인사를 시켜주었다. 별이를 안고 집의 구석구석 별이가 좋아하던 곳들을 보여주었다.


집에 오니 편안해졌던 걸까? 호흡기를 떼면 당장 죽을 것이라던 별이는 오빠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아들은 별이를 안고 숨죽여 울었고 별이는 오빠의 품 안에서 두 시간 넘게 잤다. 그리고 남편과 나의 품 안에서 새근거리며 다시 몇 시간 동안 잠을 잤다. 하루종일 가슴을 졸이며 별이만 지켜보고 있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졌을 즈음 별이가 갑자기 일어서려고 했다. 혼자 힘으로는 설 수 없는 별이를 일으켜 세워주었더니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한번 바라보고는 조용히 숨을 거뒀다.


대체 나는 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아픈 아이를 차가운 병원에 입원시켜서 온갖 검사를 받게 하고 살을 째고 꿰매는 고통을 겪게 했다. 그리고 입원을 시켜서 별이에게 남아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병원에서 홀로 보내게 했다.


지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병원은 별이를 살리지 못했다. 나는 병원에서의 모든 시간을 후회한다. 아픈 강아지들이 자신의 몸 크기 만한 케이지 안에 갇혀 있으면서 몸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저런 열악한 곳에서 치료라는 것이 가능할까? 하루에 수십만 의 입원비를 받으면서 아이들을 저런 곳에 가두어도 되는 걸까? 과연 저들은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별이를 소중히 다루었을까?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별이를 병원에 보내지 않을 것이다. 지난 열흘 간의 나의 모든 결정을 후회하면서 부디 별이가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않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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