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가 떠난 후에도 매일 아침 목련 나무에 남아 있는 잎사귀 개수를 세어보았다. 12월 마지막 주가 되니 어느새 잎이 다 떨어지고 잎새 하나만 남아 있었다. 하나 남은 잎새는 금세 떨어질 줄 알았는데 1월 첫 주가 지나도록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별이의 사망 신고를 하려고 했는데 하는 수 없이 사망 신고를 했다. 사랑하는 반려견이 하늘나라로 갔는데 사망 신고 기한을 겨우 한 달을 주다니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 등록이 되어 있는 반려견은 사망 후 한 달 안에 사망 신고를 해야 한다. 만약 기한 내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 사망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국가정보동물보호센터에 회원 가입을 해야 했다. 사망 신고를 하려고 앞으로 사용하지도 않을 아이디를 만들어야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꾸역꾸역 아이디를 만들었다. 신고 절차는 간단했다. 별도로 제출할 서류도 없고 별이의 정보를 사망으로 변경하는 것이 전부였다. 방금 아이디를 만들어서 별이를 등록했는데 바로 사망으로 변경하려니 서글펐다. 별이가 우리와 함께 한 15년이 너무 쉽게 지워지는 것 같아서 사망신고 후에 한참 울었다.
동물병원에 며칠 입원해 있으면서 나는 환자의 권리와 존업에 대해 생각했다. 동물이건 인간이건 결국 마지막에 거쳐가는 곳은 병원일 텐데 임종을 앞둔 환자는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내 몸이 마구 패대기 쳐지고 아무렇게나 다루어져도 항의를 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의료진에게 사명감은 매우 중요한 요건이다. 그러나 과연 모든 의료진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까? 고통과 죽음이 일상이 된 의료진들이 환자들의 아픔에 매번 공감할 수 있을까?
나도 예전에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한 경험이 있다. 아주 큰 수술은 아니었지만 수술 전과 수술 후의 통증은 꽤 심했다. 그런데 나는 병원에서 내가 물건처럼 다루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두렵고 아팠지만 그들에겐 별 것 아닌 쉬운 수술이었다. 내가 고통을 호소하면 의료진은 아무 대꾸도 없이 진통제를 놔주고 갔다. 주사를 맞은 후에도 고통이 별로 줄어들지 않았지만 의사나 간호사를 다시 불러봐야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통증을 삼키며 긴 밤을 지새웠다.
그나마 나는 훨씬 나은 처지였다. 내 옆에 누워있던 말기암 환자는 진통제도 약도 더 이상 효과가 없어서 신음으로 버티고 있었다. 제발 어떻게 좀 해달라는 보호자의 울부짖음에 의료진은 로봇처럼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아파서 병원에 오면 존엄은 사라지는구나.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은 내 발로 걸어 다니고 내 입으로 음식을 삼킬 수 있을 때까지만 존재하는 것이구나.'라고.
동물병원에서 마주한 진실도 다르지 않았다. 아픈 동물을 자신의 몸만 한 케이지에 가두어놓고 두세 시간에 한 번만 들여다보면서 그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말 못 하는 동물이라고 저렇게 다루어도 되는 것일까?
병원에서 심정지가 온 별이를 데려오면서 소변과 대변이 뒤범벅되어 있는 별이의 털을 보고 또 한 번 오열했다. 그 작은 케이지 안에서 대소변을 봤는데 제대로 치워주지 않아서 온몸에 오물이 묻어 있었다. 숨이 멎은 별이를 깨끗이 목욕시켜 주면서 울고 또 울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동물병원의 현실이라는 생각에 참담했다. 15년 동안 소중하게 키운 내 강아지가 이런 처우를 받을 줄 알았더라면 절대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세상에는 좋은 사람 병원도 있고 좋은 동물병원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경험한 병원들은 모두 아름답지 않았다.
마지막 열흘을 차디찬 병원에서 보내게 해서 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말 못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병원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바보 같은 주인을 만나서 고생만 하다 간 별이에게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까.
별이 사망신고를 하고 한참 울다가 창밖을 바라보았더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목련나무에도 눈이 하얗게 쌓였고 마지막 잎새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잎새를 핑계로 별이의 물건을 하나도 정리하지 않고 부여잡고 있었는데 이젠 보내줘야 하나보다. 하얀 눈이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별이를 축복해 주는 것 같아서 눈 오는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하늘로 간 별이가 이젠 아프지 말고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마지막 잎새는 눈보라도 버텨내고 별이가 하늘나라로 간지 2달이 되는 날 떨어졌다. 우연히도 이 날은 이때까지만이라도 별이가 살아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날이기도 했다. 오늘이 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만 15년이 되는 날인데 이젠 마지막 잎새도 별이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나는 무엇을 부여잡고 버텨야 할지 암담하다. 별이가 사무치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