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4

by 아르페지오

은퇴를 하고 강의를 시작한 후 4번째 학기가 끝났다. 이번 학기는 계절학기라 3주밖에 안 되는 짧은 학기였지만 이번에도 역시 많은 것을 배웠다.


사실 학교에서 몇 번 제안을 받았지만 계절학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매일 학교에 가야 하는 것도 힘든데 하루에 3시간씩 강의를 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목이 약해서 강의를 하고 나면 항상 목이 쉬는데 회복할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 날 강의를 또 해야 하니 절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15년을 함께 한 반려견이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났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슬픔이 몰려왔다. 뭐라도 해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덜컥 계절학기 강의를 수락해 버렸다. 승낙을 해 놓고는 걱정이 돼서 안절부절못하면서 몇 주를 보냈다. 그리고 12월 마지막 주 학기가 시작되었다.


몸도 마음도 축 처져서 흐느적흐느적 겨우겨우 학교에 갔다. 그런데 강의실에 가니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절학기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만 등록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3주 내내 매일 학교에 와서 강의를 들어야 하고 8일 만에 중간고사, 15일 후에는 기말고사를 봐야 하는 힘든 코스를 택한 아이들이니 당연한 것이었다.


강의실에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열기를 느꼈다. 이전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패드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 아이들은 내 눈을 바라보고 눈을 맞추며 강의를 들었다. 예쁜 학생들을 보니 없던 힘이 불쑥 쏟았다. 더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강의 자료도 보충하고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강의를 했다. 3시간 강의를 하면 목이 쉰 채로 집에 돌아왔고 지쳐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다행히 푹 자고 일어나면 컨디션이 회복되었고 다음 날 또 목이 터져라 강의를 했다. 독감이 유행이라 행여라도 독감에 걸릴까 봐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학교 이외에 사람이 많은 곳은 절대 가지 않았다. 강의 100%로 진행되는 수업이라 선생님인 내가 아프면 큰일이었다.


강의 절반이 지났을 즈음 중간고사를 봤고 아이들 모두 잘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수강생 절반 이상이 시험을 잘 봐서 신이 났다. 일반 학기에는 비슷한 난이도로 출제를 해도 수강생 10% 정도만 이 정도 점수가 나왔다. 정말 열심히 하는 학생들만 모여있었다.


그러나 16주에 진행되는 강의를 3주 만에 하려니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강의 자료도 수정해야 했고 주말에는 과제 채점을 해야 했다. 일반 학기와 비슷할 거라 생각했던 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이것저것 처리하면서 매일 강의를 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배는 더 힘들었다. 강의 막바지에 이르니 아이들도 나도 지쳐갔다. 아이들은 감기 혹은 독감에 걸려 콜록대기 일쑤였고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집어넣느라 힘겨워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나대로 매일 3시간의 강의에 지쳐가고 있었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니 체력이 바닥나고 있었다. 원래도 체력도 좋지 않은데 무리를 하니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남은 며칠만 잘 버텨보자고 다독이면서 무사히 학기를 끝냈다.


계절 학기는 절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좋은 점이 많았다. 열심히 듣는 학생들만 있었기 때문에 강의가 훨씬 재밌었고 학생 수가 적어서 과제도 신경 써서 봐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이름도 하나하나 외울 수 있었다. (계절 학기 정원은 30명이었는데 매번 50명이 넘는 강의만 하던 내게는 아담한 사이즈였다.) 모두 일반 학기 때는 불가능했던 것들이었다.


이제 다음 학기가 시작되는 3월까지는 푹 쉬고 재충전을 하려고 한다. 예쁜 학생들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잘 보냈다. 그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말을 하다 울컥할 것 같아서 하지 못했다. 그래서 글을 통해서나마 마음을 전한다.


나의 후배이기도 하고 학생이기도 한 아이들아, 너희들과 3주 동안 함께 할 수 있어서 선생님은 행복했다. 너희들 덕분에 슬픔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어. 너희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면서 열심히 수업을 했는데 부디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기 바란다.


은퇴를 하고서야 나의 적성을 찾은 것 같다. 교단에 서서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이 너무 좋다. 나이가 들어보니 일의 가치는 반드시 돈과 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분에 넘치는 보람과 기쁨을 주는 일을 이제라도 찾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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