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사를 가신지 5일이 지났다.
매일 새벽 엄마의 부재를 몸으로 느낀다. 새벽에 거실에 나와도 시끄럽게 켜진 TV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귀가 어두운 엄마는 TV를 항상 크게 틀어놓고 계셨다. 주무시는 것 같아서 TV를 끄면 왜 끄냐고 화를 내셔서 새벽에도 밤에도 엄마의 TV는 건드리지 못했다. 그렇게 24시간 내내 시끄럽게 굴던 엄마의 TV 소리가 사라지니 집안에 적막이 감돈다. 고요함을 그토록 갈망했는데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집이 낯설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지만 어떤 날은 늦잠을 자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새벽 5시만 되면 부엌에서 물 끓이는 소리, 냉장고를 열고 닫는 소리 등 각종 생활 소음이 들려왔다. 새벽 5시 반에 산책을 가는 엄마는 유난히 새벽부터 부산하셨다. 피곤해서 조금만 더 눈을 붙이려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어 결국 몸을 일으켜야 했다. 그런데 우리 집 새벽이 너무 고요하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으니 집안에서도 살금살금 걷게 된다. 오십 년 만에 처음으로 조용한 새벽을 마주하니 낯설다.
엄마의 짐이 빠져나간 후 집 안에 빈 공간이 생겼다. 박스에 아무렇게다 구겨져 있던 남편 옷과 내 옷을 보관할 옷장도 생겼고 베란다에 늘어져 있던 짐을 보관할 창고도 생겼다. 여기저기에 널려있던 짐을 수납공간에 정리했더니 집이 모델 하우스처럼 깔끔해졌다. 남편은 집이 두 배는 넓어진 것 같다며 좋아하는데 나는 깔끔한 집이 낯설다. 오십 평생 이렇게 비워진 채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공간을 무언가로 채워야 할 것 같고 불안하다. 어느새 나도 물건으로 가득 채워진 집에 길들여졌었나 보다. 습관이 참 무섭다.
냉장고에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우리 집 냉장고는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고춧가루부터 얼려놓은 고기, 생선으로 가득 찬 냉장고에 나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가끔 맛있는 음식을 사서 냉동실에 얼려놓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꾹 눌러 참았다. 내 집이었지만 내겐 냉동실 한 칸도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먹고 싶으면 다음에 또 와서 먹으면 된다고 나 자신을 달래 보았다. 그런데 엄마가 이사를 가니 냉장고가 텅 비었다. 남편과 내가 먹는 식재료만 남아있는 냉장고는 절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부재가 이렇게 많은 것을 비워내다니 새삼 놀란다. 내 삶에서 엄마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낯설고 고요하고 적막한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 오랜 친구를 만나고 왔다. 그녀가 말했다. '너는 항상 너무 참는 게 문제라고, 참고 참다가 몸이 망가진 후에야 감정을 터뜨리는 게 문제라고. 아무리 가족이라도 네가 할 수 없는 희생을 강요하면 진작에 도망쳤어야 했다고.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너를 위해서 살라고.'
왜 몰랐을까? 그것이 잘못된 희생이었다는 것을.
여태 인생을 헛살았다는 생각에 괴롭고 힘들다. 가족이 가장 나를 힘들게 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내가 바보 같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헛똑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