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살 독립일지 9

by 아르페지오

엄마가 떠난 후 엄마의 자리를 비워내는 중이다.


물건으로 꽉 차 있어서 청소할 엄두를 못 내던 엄마의 방을 쓸고 닦았다. 대여섯 번쯤 쓸고 닦고 나니 눌어붙어있던 먼지가 벗겨지고 깨끗한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맨날 좁은 방에 갇혀 있는 자신이 불쌍하다고 했는데 짐과 가구를 모두 들어낸 엄마의 방은 꽤 넓었다. 방이 좁은 것은 엄마 때문이었는데 나는 엄마에게 좁은 방밖에 제공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절어 살았다.


엄마의 음식들을 정리해서 버렸다. 냉장고에는 각종 가루와 말린 채소들, 떡, 고기와 생선이 가득 차 있었다. 유통 기간도 알 수 없는 말라비틀어진 음식들을 모두 정리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다들 엄마가 해 준 밥을 좋아하던데 난 엄마의 음식이 끔찍하게 싫었다. 엄마가 남기고 간 음식을 버릴 때마다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죄책감이 들었다 반복하며 냉장고를 정리했다.


엄마가 남기고 간 잡동사니들도 정리했다. 엄마는 일주일 내내 짐을 쌌고 자신의 짐을 살뜰하게 챙겨갔다. 그런데도 창고에는 오래된 액자, 닳아빠진 운동화, 퀴퀴한 냄새가 나는 가방 등의 잡동사니들이 남아있었다. 엄마가 두고 간 물건이면 어차피 기억도 못할 것이니 모두 정리했다.


엄마가 키우던 화분들도 모두 버렸다. 엄마는 해마다 봄이 되면 화분을 사들고 와서 가을까지 정성껏 돌보았다. 그러다가 겨울이 되면 아끼던 화분을 쳐다보지도 않고 쓰레기로 만들곤 했다. 식물도 하나의 생명인데 꾸준히 돌볼 수 없으면 품지 말지, 예쁘다고 사 와서 결국 다 버리는 것이 못마땅했다. 이미 다 말라비틀어진 식물들을 땅에 묻어주고 화분은 깨끗하게 닦아서 정리했다.


엄마가 떠난 후 일주일 내내 정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는 너무 빨리 정리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겠지만 복잡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일주일 내내 쓸고 닦고 버렸더니 이제야 겨우 내 집처럼 느껴진다. 오십이 넘도록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내 취향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부디 엄마도 자신의 공간에서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사시길 바란다.


성인이 되면 부모와 자식은 독립해서 따로 살아야 한다. 몰랐던 것은 아닌데 큰돈이 들어서 어영부영하다가 반백의 나이가 돼서야 부모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잘 살면 된다고 나 자신을 위로해 본다. 오십 평생을 바보 같이 살았으니 앞으로 남은 인생은 멋지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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