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살 독립일지 10

by 아르페지오


엄마가 떠난 후 엄마와의 관계를 되짚어 보고 있다.


우리 엄마는 차가운 사람이었다. 애정 표현을 거의 하지 않았고 감정 동요도 별로 없었다. 집안이 풍비박산 나서 결혼한 딸네 집에 들어왔을 때도 동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고 헤쳐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어릴 때는 이렇게 강인한 엄마가 좋았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해결책을 제시해 주던 엄마는 어린 시절 나의 우상이었다. 무슨 일이 닥쳐도 항상 침착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는 엄마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엄마가 강할 수 있었던 것은 타인의 희생에 무관심했기 때문이었다. 가족의 희생을 강요하더라도 나만 괜찮으면 되니까 엄마는 평생 고상함을 잃지 않았다.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엄마의 희생양은 아버지였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녔고 월급도 따박따박 가져다줬지만 엄마는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강남 한복판에서 당신 월급으로는 살기 힘들다고, 능력이 없는 당신 때문에 애들이 과외도 못하고 좋은 옷도 못 입는다고 아버지를 몰아세웠다. 중산층 가정이라면 전혀 부족하지 않았을 월급이었는데 그 돈으로 알뜰하게 살 생각은 하지 않고 상류층의 삶만 바라보았다. 형편에 맞춰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텐데 우리 부모님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돈 걱정이라곤 해 본 적이 없던 아버지와 경제관념이 없는 엄마가 만나서 우리 집 경제는 점점 파국으로 치달았다. 문제의 원인은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강남 한복판의 값비싼 아파트였다. 집을 물려줄 거면 생활비도 같이 주셨어야 했는데 할아버지는 막내아들에게 덜렁 아파트 한 채만 물려주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경제관념이 없는 막내아들은 강남 생활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지만 집을 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공감능력이 없는 며느리는 생활비를 아껴 쓸 생각은 하지 않고 불평만 해댔다. 점점 코너에 몰리고 돈에 쪼들리던 아버지가 주식에 손을 대서 전재산을 날려 버린 우리 부모는 큰 딸네 집으로 들이닥쳤다. 큰딸이 결혼한 지 채 1년도 안 되었을 때였다.


그때부터 엄마의 희생양은 첫째 딸로 바뀌었다. 경제력을 상실한 남편은 이제 필요 없었다. 큰딸에게 아이는 내가 키워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돈을 벌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일과 육아에 치여 동동거리던 딸은 구세주 같은 엄마를 신봉했다. 소중한 아이를 키워주는 엄마가 요구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해드렸다.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하면 할부로 자동차를 사 드렸고 용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라도 용돈을 드렸다. 엄마는 손주를 방패 삼아 자신이 필요한 것은 뭐든 당당하게 요구했다. 집안은 쫄딱 망했지만 엄마는 딸네집에서 여전히 강남 사모님처럼 차를 몰고 다녔고 친구들과 브런치 모임을 하면서 살았다.


28년 동안 아무 의심 없이 엄마가 해달라는 것을 해주던 딸은 갱년기에 건강이 나빠지면서 정신을 차렸다. 조직 검사를 받으면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제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 딸은 자신과 엄마와의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국 엄마와 큰딸은 헤어지게 되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먹여주고 재워주고 생활비를 대주면서 용돈까지 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는데,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엄마가 자동차를 끌고 다니면 안 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나는 엄마가 요구하면 뭐든지 다 해드렸다. 엄마는 불쌍한 사람이니 큰 딸인 네가 보살펴줘야 한다는 엄마의 주문이 끊임없이 나를 세뇌시켰다. 그나마 아버지처럼 주식에까지 손을 대지 않고 여기서 멈춘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나는 파산하지는 않았으니까.


엄마와의 관계를 돌아볼수록 화가 치민다. 이 분노가 누그러져야 엄마를 다시 볼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언제쯤이 될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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