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살 독립일지 7

엄마의 이사

by 아르페지오

결국 엄마와 따로 살기로 했다. 묻어두었던 감정을 터뜨리고 나니 매일 엄마와 충돌했다. 28년 동안 일방적으로 참았던 것들을 모두 뱉어냈다. 화가 나는 것이 있으면 바로 말했고 고쳐야 할 행동은 즉시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말했다. 도저히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 따로 살게 집을 마련해 달라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참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신을 차린 후 28년이나 부모를 부양하느라 모아 놓은 돈이 없으니 따로 살고 싶으면 둘째에게 요구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와 같이 살기 힘드니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는데도 미적거리고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당장 집을 마련해서 엄마를 데려가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금요일에 이사를 하는 엄마는 이번 주 내내 정리를 하고 있다. 옷장에서, 서랍에서, 창고에서, 신발장에서 끝도 없이 엄마의 짐이 쏟아진다. 이 많은 옷과 신발을 보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사를 할 때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핀잔을 받았다. "할머니 제발 짐을 좀 버리고 사시라고, 이렇게 짐이 많은 집은 처음이라고". 엄마의 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짐을 보면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손사례를 쳤다. 나의 얼굴은 수치심에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엄마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모두 필요한 것이라며 차곡차곡 쌓아서 다시 차곡차곡 넣었다.


그런 엄마가 자신의 물건을 버리고 있다. 아마도 동생이 구해 놓은 방 한 칸에 들어갈 수 있는 물건이 제한적이니 어쩔 수 없이 정리를 하는 것 같다. 28년 동안 같이 살면서 그렇게나 바라던 정리인데 지켜보는 것이 힘들다. 엄마가 정리정돈을 하는 모습이 낯설고 그저 이 불편한 과정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은 엄마이지만 마치 내가 엄마를 쫓아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진작에 자식이 바라는 대로 정리정돈을 하고 서로 배려하며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내일이면 엄마는 이사를 간다. 그리고 나는 오십이 넘어서 처음으로 부모로부터 독립을 한다. 엄마가 떠나고 나면 어떤 기분일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나의 다친 마음이 아물 때까지는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으려 한다.


엄마와 싸우고 나서 여기저기가 탈이 났다. 힘겨운 감정싸움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예민한 편이라 마음이 아프면 몸에도 탈이 나곤 했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엄마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보기로 했다. 28년 내내 엄마를 보살피느라 나는 살피지 못했으니 단 몇 달만이라도 나만 생각하면서 살아보려고 한다.


몰랐다. 내가 그렇게 힘들게 제공하던 것들이 엄마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나의 희생을 가족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다. 직장 내 괴롭힘보다 가족들의 가스라이팅이 나를 더 아프게 했었다는 것을.


가정에서도 내가 피해자였음을 깨닫게 되어 씁쓸하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나 보다. 참고 배려하면 언젠가는 알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내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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