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씨네 집안이 서서히 무너지는 동안 군자씨의 딸 둘은 대학에 진학했다. 두 딸은 군자씨와 같은 대학에 갔다. 두 딸 모두 K 대학이나 Y 대학은 무난히 갈 수 있는 성적이었는데 군자씨 부부는 딸들이 S대나 E대에 가기를 원했고 S대를 갈 수 없었던 딸들은 부모님의 의견을 따라 E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입시 결과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학교 시험에서는 항상 전교 10등 안에 들던 딸의 친구들은 전기 대학 중에 아무 곳에도 합격하지 못했다. 군자씨는 자신이 그토록 애달파서 남편을 궁지로 몰아세웠던 고액 과외가 대학 가는데 전혀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시험 문제를 미리 풀어보게 해서 내신 성적만 겨우 올려주었던 고액 과외는 대학 입시에서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신을 차린 군자씨는 남편을 몰아세웠던 것을 후회했지만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군자씨 남편은 주식에 손을 댄 지 몇 달 만에 큰 손해를 보았고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서 또 주식을 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군자씨 남편이 사는 주식은 값이 오르지 않았다. 주식을 사면 살수록 통장 잔고는 바닥이 났고 결국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서 집으로 독촉장이 날아오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신용 대출이 막힌 군자씨 부부는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서 대출 이자를 갚기 시작했다. 원금 반환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저 매달 꾸역꾸역 이자만 막아내면서 군자씨네는 강남에서의 생활을 이어갔다. 경제관념이라곤 없고 고생을 해 본 적이 없는 군자씨 부부가 집을 팔아서 빚을 갚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딸들에게는 더 이상 돈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딸들은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어서 썼다. 그녀의 딸들도 집에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자씨 부부가 꾸역꾸역 버티고 있던 1997년에 대학원을 졸업한 큰 딸은 취직을 했다. 그리고 직장에서 만난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해서 이듬해에 아이를 낳았다. 큰 딸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던 1997년과 1998년 사이에 IMF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재난이 나라를 덮쳤다. 온 나라의 경제가 마비되었고 군자씨 남편이 소유하고 있던 주식들은 휴지 조각이 되었다. 많은 기업이 파산하면서 군자씨 남편도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자조차 낼 수 없었던 군자씨네 가정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하루아침에 은행에 모든 재산을 뺏기고 거리로 쫓겨난 군자씨 가족은 아이를 출산하고 아직 몸도 풀지 못한 큰 딸의 신혼집으로 들어갔다. 아직 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둘째 딸까지 세 식구가 큰 딸네 집에서 기숙하기 시작했다.
1998년 여름, 겨우 스물다섯이었던 큰 딸은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갑자기 부모와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스무 평도 안 되는 신혼집에서 여섯 식구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