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소설> 엄마의 인생 7

by 아르페지오

큰 딸 가족과 군자씨는 생각보다 궁합이 잘 맞았다. 딸과 사위는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야 집에 들어왔고 군자씨는 하루 종일 어린 손자를 돌보다가 일찍 잠이 들었다. 서로 마주칠 일이 별로 없으니 부딪칠 일도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정신병동에 입원한 군자씨 남편은 모두에게서 잊혀 갔다. 큰 딸의 통장에서 매달 자동 이체가 되는 병원비가 한 달에 한번 그의 존재를 알려주었지만 큰딸은 아버지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군자씨의 딸은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매달 야근 수당까지 꽉꽉 채워서 일을 했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몸으로 일주일에 80시간 넘게 일을 했던 그녀는 아버지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정신병동에 갇힌 군자씨 남편은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가족을 불러달라고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그러나 그의 부인도, 두 딸도 병원에 오지 않았다. 군자씨 남편은 몇 년이 지난 후 결국 정신병동에서 숨을 거뒀다. 군자씨네 가족은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찾아올 손님도 없었고 부고를 알릴 친척조차 없었다. 군자씨 남편은 쓸쓸하고 조용하게 세상을 떠났다.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는 끝까지 외롭게 세상과 이별했다.


그렇게 몇 년이 또 흘렀고 군자씨의 손자는 열한 살이 되었다. 손자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니 군자씨에게 갑자기 많은 시간이 생겼다. 학교에 갔다 와서 오후 내내 군자씨 품에 있던 손자는 수학 학원이나 영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손자가 학원에 갔다 오면 저녁 7시가 훌쩍 넘었고 군자씨는 하루 종일 무료하게 손자를 기다렸다. 오전 9시에 손자를 학교를 보낸 후 오후 7시까지는 군자씨가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보였다. 갑자기 시간이 생긴 군자씨는 백화점 문화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문화센터 강좌 하나를 등록했고 거기서 사귄 동네 친구와 함께 또 다른 강좌를 등록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보니 군자씨의 일과는 손자보다 더 빽빽하게 채워졌다. 문화센터 강좌는 별로 비싸지 않아서 딸의 생활비 통장에서 비용이 빠져나가도 티가 나지 않았다. 큰 딸은 군자씨가 하루 종일 집을 비우는 것을 몇 개월 동안 모르고 지냈다.


어느 날 몸이 아파서 조퇴를 하고 집에 일찍 들어온 큰 딸은 자신의 아들이 혼자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들에게 할머니는 어디 가셨냐고 물었더니 이 시간에는 항상 할머니가 집에 안 계시다고

했다. 한창 클 나이인 아들이 매일 라면을 먹고 학원에 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큰 딸은 고민에 빠졌다. 친정 엄마에게 아이 간식만이라도 챙겨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큰 딸은 십 년 넘게 매일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는 친정 엄마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못했다. 갚아야 할 빛이 남아서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었던 군자씨 딸은 진실을 외면하기로 했다. 아들이 라면을 먹고 학원에 가는 것은 속상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군자씨 큰 딸은 자신이 요리를 하기로 했다. 주 5일 내내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아들에게 주말만이라도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었던 그녀는 요리책을 사서 주말 내내 아들의 삼시 세끼를 정성껏 해서 먹였다.


겨우 십 년 만에 조화로웠던 동거가 끝나고 불편하고 어색한 동거가 시작되었지만 군자씨는 이를 알지 못했다. 이제 딸네집에서 군자씨의 역할은 없어졌지만 큰 딸은 엄마가 받을 상처가 두려워서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딸의 마음을 몰랐던 군자씨는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했다. 황혼 육아에서 벗어나서 처음으로 만끽한 자유는 강렬하고 짜릿했다. 군자씨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서 동네를 누비며 다녔고 군자씨 딸의 가슴은 멍들어갔다.


손주를 열한 살까지 키워 준 군자씨의 나이는 예순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가 할 일은 없어졌는데 그녀는 일을 해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평생 남편 혹은 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만 하며 우아하게 살았고 다르게 사는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연작 소설> 엄마의 인생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