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씨가 황혼 육아에서 벗어나 인생을 즐기는 동안 군자씨의 큰딸은 병들어 갔다. 스물네 살부터 쉬지 않고 일해 온 군자씨 딸은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가족을 먹여 살여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회사는 약육강식의 세계, 동물의 왕국 그 자체였다. 물고 뜯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험한 세상에서 마음이 약한 군자씨 딸은 병들어갔다.
군자씨 딸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장염이나 감기를 앓았다.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가 생겨서 머리를 짧게 자르지 못하고 긴 머리로 탈모를 가리고 다녔다. 소화가 잘 안 돼서 음식을 골고루 먹지 못했다. 잔병치례로 365일 항생제를 달고 살았으니 소화가 잘 될 리가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녀는 가정위 경제를 책임져야 했다. 하필 군자씨 큰 사위까지 몇 개월 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쉬고 있어서 그녀는 네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군자씨 딸은 매년 일 년만 더 일 년만 더 다짐하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나 바깥 활동으로 바빴던 군자씨는 딸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딸은 새벽에 회사에 가서 한밤중에야 집에 들어왔고 해외 출장도 많았기 때문에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군자씨는 하루 종일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들어와서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모녀는 서로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먼 훗날, 여든을 바라보는 군자씨가 큰 딸의 집에서 쫓기듯이 이사를 갈 때 둘째 딸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 엄마는 겨우 예순이었고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나이였다고, 그때부터라도 언니의 짐을 덜게 본인의 용돈 정도는 벌었어야 했다"라고. 그러나 예순 살의 군자씨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매달 큰 딸의 통장에서 자동이체되는 용돈을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십 년 넘게 정성껏 손주를 키워줬으니 이 정도는 누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한 집에 살고 있었지만 스물넷에 덜컥 가장이 된 큰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군자씨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평생 아르바이트조차 해 본 적이 없었고 돈을 벌어 본 적은 당연히 없었다. 온실 속에서 화초처럼 우아하게 살아온 그녀가 직장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리 만무했다.
그렇게 다시 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군자씨는 일흔이 되고 군자씨의 큰 딸은 사십 대 중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