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소설> 큰딸의 인생 1

by 아르페지오

군자 씨 큰딸 희수 씨의 기억은 세 살 무렵부터 시작된다. 돈암동 집 정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가 키우던 강아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기억, 그것이 희수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이다.


희수가 4살이 되었을 때 희수네 가족은 압구정동으로 이사했다. 사업을 크게 하던 할아버지는 압구정동 아파트를 4채나 분양받아서 세 아들에게 나눠주었다. 제일 큰 평수는 큰 아들에게, 중간 평수는 둘째 아들에게 그리고 남은 두 채의 소형 아파트 중 하나는 막내아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남은 한 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입주하였다.


희수네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과 같은 동 바로 위층이었다. 돈암동 저택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1층에서, 희수네는 2층에서 살았는데 아파트에 이사를 와서도 똑같이 위층, 아래층에 살았으니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희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왜 장남인 큰아버지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지 않고 막내아들인 희수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쨌든 희수는 태어났을 때부터 매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사업가인 남편을 내조하느라 세 아들을 품에서 키우지 못하고 보모에게 맡겼다.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할머니에게 희수는 선물 같은 존재였다. 할머니는 희수가 태어났을 때부터 정성껏 돌보았고 돈암동 저택에서도, 압구정동 아파트에서도 희수는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압구정동으로 이사를 온 지 일 년쯤 지났을 때부터 할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부도 위기를 막으려던 할아버지는 부도를 막지 못했고 못된 병을 얻었다. 병원에서 더 이상 손쓸 수가 없다는 통보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냈다. 희수 엄마, 군자 씨가 시아버지의 병간호를 맡았고 할머니는 희수와 희수 동생을 돌봤다.


며느리의 정성 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암 선고를 받은 지 얼마 안 지나 돌아가셨다. 홀로 외롭게 지내던 할머니는 희수를 아예 맡아 키우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집에 희수 방을 만들어 주었고 친구들 모임까지 희수를 데리고 다녔다. 연년생 딸을 키우느라 힘이 달렸던 군자 씨는 시어머니가 첫째를 맡아 주는 것이 내심 좋았다. 그렇게 희수 엄마 군자 씨와 희수 할머니는 희수 동생과 희수를 하나씩 나누어 길렀다. 그리고 희수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할머니도 할아버지를 따라서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셨다. 초등학생이 된 희수는 처음으로 엄마 군자 씨와 함께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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