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잃고 갑자기 엄마와 지내게 된 희수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줄곧 둘째만 맡아 키우던 군자 씨도 큰딸 희수가 낯설긴 마찬가지였다. 시어머니가 딸을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우는 것이 못마땅했던 군자 씨는 희수를 따스하게 품지 않았다. 군자 씨는 원래도 차가운 사람이었고 자식에게도 애정 표현을 하거나 사랑을 퍼주는 법이 없었다. 할머니 품에서 부족함 없이 사랑을 받고 자란 어린 희수는 매일 밤 할머니 옷을 껴안고 할머니를 그리워했다.
반면 어릴 때부터 엄마와 함께 지냈던 둘째는 엄마에게 최적화되어 있었다. 둘째는 엄마의 기분이 나쁜 것 같으면 혼자 조용히 놀았고 절대 엄마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낯설었던 희수는 엄마를 지나치게 찾았고 엄마의 짜증을 오롯이 받아내야 했다.
다행히 희수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곧 터득했고 절대 엄마의 말을 거스르지 않는 착하고 순한 아이로 자랐다.
어린 시절 넉넉하지 않았던 집안 형편으로 결핍이 있었던 군자 씨는 아이들 교육에 목숨을 걸었다. 어렸을 때부터 동화 전집, 세계문학 전집을 수십 권씩 사서 아이들 곁에 두었다. 책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아이들은 심심하면 책을 읽으면서 자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학교 성적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군자 씨는 첫째와 둘째가 초등학생이 되자마자 자신이 어렸을 때 가장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 엄마 말을 잘 들었던 첫째는 피아노 선생님에게 회초리로 맞으면서도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6년이나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반면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센 둘째는 1년 만에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마다 군자 씨는 첫째 딸에게 피아노 연주를 하게 했다. 큰딸이 쇼팽의 왈츠나 야상곡을 멋지게 연주하면 군자 씨는 으쓱해졌다. 친구들의 칭찬에 중독된 군자 씨는 큰딸을 예원중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당시 압구정동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딸에게 음악이나 미술을 전공을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군자 씨도 그들과 같은 길을 가고 싶었다. 음악을 전공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했고 군자 씨 남편 월급으로는 어렵다는 것은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일단 지르고 나면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는 신조, 그것이 군자 씨의 인생철학이었다.
예원중학교를 위한 입시 레슨을 시작하자마자 큰딸 희수 씨는 이것이 자신의 길이 아님을 알았다. 하루에 한 시간이던 피아노 레슨이 3시간으로 늘었고 연습 시간은 두 배로 늘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피아노만 쳐야 하는 것은 희수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았다. 단지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피아노를 배우던 희수는 처음으로 반항을 했다.
군자 씨는 절대 예원중학교는 가지 않겠다는 희수의 고집을 꺽지 못했다. 희수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를 거스른 것이었으니 쉽게 수그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희수는 일반 중학교에 진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