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했던 초등학생 시절과 달리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부의 수준에 따라 그룹이 나뉘었다. 한 교실에서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같이 공부했지만 대형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소형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지냈다.
학교가 끝난 후 교문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아이들은 대형 아파트에 사는 부잣집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책가방은 죠다쉬나 쓰리세븐 제품 혹은 아직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은 외국 브랜드 제품들까지 있었다. 교문에서 왼쪽으로 가는 아이들은 소형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의 가방에는 아무런 로고가 없었고 운동화도 마찬가지였다. 희수는 엄마가 남대문 시장에서 사 온 책가방과 운동화를 신고 친구들과 함께 교문 왼쪽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사춘기가 되어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어떤 그룹과 어울려야 하는지 알았다. 당시는 교복 자율화 시절이라 입은 옷만 봐도 부잣집 아이인지 평범한 집 아이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십 대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옷과 신발이었으니 자연스럽게 자신과 비슷한 브랜드 옷, 비슷한 브랜드 신발을 신은 친구들과 어울렸다. 어린 희수는 이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리 부모가 이 동네에서 하층 계급에 속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집이 친구들 집보다 많이 가난하다는 것을.
친구들과의 차이를 인식한 이후부터 희수는 옷차림에 신경에 쓰였다. 스펠링까지 틀린 해괴한 라벨이 붙어있는 시장표 옷을 들키지 않으려고 학교에서는 겉옷을 절대 벗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서로 왜 이렇게 다를까 궁금해하는 것이 전부였다.
중학생 희수는 가난과 결핍을 느끼기 시작했다. 친구들 중에 동생과 방을 같이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생과 방을 같이 쓰는 희수는 친구들을 절대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방학이면 스키를 타러 콘도나 별장으로 여행을 갔다. 그런데 희수네 집에는 콘도도, 별장도 없었다. 간혹 친구의 초대를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희수는 매번 거절했다. 초대에 응하면 다음번에는 희수네 별장에 초대를 해야 하는데 희수네 집에는 초대할 별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춘기 희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집안 분위기였다. 희수 엄마와 희수 아빠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엄마 군자 씨는 걸핏하면 아빠를 무시했다. 희수 아버지는 대기업 부장이었고 대한민국 중산층 기준으로 볼 때 상위층에 속하는 월급을 받았지만 압구정동 한복판에서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아마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희수는 철이 일찍 들었다. 희수는 어른이 되면 절대 분수에 맞지 않는 동네에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절대 엄마,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