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소설> 큰딸의 인생 5

by 아르페지오

캠퍼스 라이프는 생각보다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재밌고 즐거운 대학 생활을 꿈꿨지만 현실은 상상과는 달랐다. 강의는 대부분 지루했고 미팅, 소개팅은 강의보다 더 재미가 없었다. 겨우 이런 것을 위해 3년 내내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나 하는 생각에 희수는 회의론에 빠졌다.


그래도 대학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다. 부잣집 아들, 딸들만 모여 있지 않은 곳에서 희수의 마음도 편안해졌다. 더 이상 긴장할 필요도 없었고 남들 시선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희수가 압구정동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 친구들은 콩깍지를 쓰고 희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잘하면 '강남에 사는 애는 다르다.'라고 했고 무언가를 못하면 '곱게 자라서 그래'라는 말을 들었다. 압구정동에서 희수네 집은 최하층이었는데 대학교 친구들은 희수를 부잣집 딸이라고 했다. 대학교 친구들은 희수의 남대문 시장 표 옷을 보고도 '역시 강남 사는 애는 다르다'라고 했고 '그라탱' 같은 음식을 먹어봤다고 말하면 엄지를 추켜올렸다.


희수 씨는 또 다른 벽에 부딪쳤다. 겨우 압구정동에서 탈출했는데 또다시 압구정동 프레임에 갇히게 되었던 것이다. 압구정동에서 자신의 가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줄 수도 없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희수는 될 수 있으면 말을 하지 않았고 눈에 띄지 않으려 했다. 뭘 하기만 하면 강남 꼬리표가 따라다녔으니 가능하면 튀지 않아야 했다.


지긋지긋한 압구정동 꼬리표는 취업할 때까지 희수를 괴롭혔다. 첫 면접 때 부잣집 따님이 왜 굳이 일을 하려고 하냐고 묻던 면접관의 표정을 희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압구정동 꼬리표 때문에 대학 생활을 적극적으로 누리지는 못했지만 희수 씨는 성실하게 대학 생활을 마쳤다. 희수는 대학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과 용돈을 충당했다. 매일 돈 때문에 싸우는 아빠, 엄마에게 더 이상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고 빨리 돈을 벌어서 지긋지긋한 부모 품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졸업하고 서너 개의 회사에 합격했지만 월급을 가장 많이 주는 곳으로 선택했다. 스물두 살 희수에게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4년의 대학 시절은 한창 빛나야 할 시절이었지만 희수에게는 회색빛으로 기억된다.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느라 대학 생활을 즐길 여유도 없었고 연애도 하지 않았다. 희수는 탈출을 꿈꾸며 무미건조하게, 그렇지만 성실하게 대학 생활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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